[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53. 성 베네딕토 II
철저한 은수생활로 수도규칙 기틀 다져
- 작품 해설 : 작자 미상, 1540년 경, 스토카르드 국립 미술관.
동굴서 은수생활하는 성인에 줄 매달아 빵 전달하는 모습 자연 · 도시 세밀하게 묘사 북유럽 회화 특징 잘 살려
반쪽 난 체를 기도로 다시 붙게 만든 기적을 일으킨 후 베네딕토(약 480~547)는 유모를 떠나 수비아코로 가서 3년간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했다. 철저하게 고립된 곳이어서 로마노라 불리는 사람만이 유일하게 성인이 기거하는 장소를 알았다. 동굴에 다다르는 길이 없었기 때문에 성인을 돌봐주던 로마노는 줄에다 빵을 매달아서 동굴로 내려 보냈고, 종을 쳐서 빵이 도착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부활절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부활절 음식을 준비하던 한 사제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너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지만 동굴에 있는 나의 종은 배를 곯고 있다.”
이 말씀을 듣고 사제는 즉시 동굴을 찾아 나섰고, 어렵사리 베네딕토를 찾았다.
“일어나서 음식을 드세요.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이 음식을 멀리 하실 생각일랑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세상과 격리 되어 있던 베네딕토는 사실 그날이 부활절인지도 몰랐다. 두 사람은 함께 축성을 내리고 음식을 먹었다.
어느 날 그를 방해하려던 사탄이 베네딕토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여인이 마치 실제인양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였다. 여인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그를 육욕에 사로잡히게 했고, 은수생활을 그만두고자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주님의 은총으로 정신을 차린 베네딕토는 가시덤불에 온몸을 뒹굴며 유혹을 물리쳤다. 몸은 피투성이가 되고 상처를 입었지만 영혼의 고통은 상처로부터 빠져나갔다. 이날 이후 주님은 베네딕토가 육체적 유혹을 받지 않게 하셨다.
베네딕토의 명성이 나날이 높아지면서 수도자들이 몰려와서 그를 수도원장으로 모시며 지도를 받기를 원하였다. 베네딕토는 자신은 적합하지 않다며 오랫동안 거절했으나 마침내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엄격한 규칙을 지키게 하니 수도자들은 그를 원장으로 모신 것을 후회하고는 어느 날 수도자들은 포도주에 독약을 섞어서 식탁에 앉은 베네딕토에게 권했다. 그가 성호를 그어 축성하자 마치 돌로 맞은 것처럼 잔이 깨졌다. 독이 든 것을 알게 된 성인은 일어나서 온화하게 말했다.
“형제들이여,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기시기를…. 내가 일찍이 여러분들께 제가 수도원장으로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는 독약을 탄 수도자들을 탓하지 않고 온화함으로 감쌌던 것이다.
이 그림은 베네딕토 성인이 은수 생활 중 로마노가 바구니에 빵을 넣어서 성인에게 내려 보내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베네딕토회 수도자를 암시하는 검은 수도복을 입고, 두 손을 들어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드리고 있다. 성인 앞에는 성경, 세상사의 허망함을 뜻하는 해골, 그리고 은수자임을 알리는 십자가상이 보인다. 그리고 그림의 위쪽에는 마치 모기처럼 그려진 마귀가 성인에게 빵이 왔음을 알리던 종을 부수고 있는 모습도 보이며 그 뒤에는 교회가 보인다. 이 그림의 뒤쪽에는 건물들이 있는 도시가 보이는데 아마도 수비아코라는 도시를 상상하여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을 제작한 작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나 자연과 도시에 대한 정교한 표현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기념비적인 특징이 아닌 북유럽 회화의 세밀한 회화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0년 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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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52. 성 베네딕토 I
두 동강 난 ‘체’ 기도로 복구하는 기적
- 작품 해설 :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 〈성 베네딕토가 행한 첫 번 째 기적〉, 패널에 템페라, 108×62.5 cm, 피렌체, 우피치.
유모 · 성인 집에 있는 모습, 첫 번째 기적 행하는 성인 인물 천장에 닿을 듯 그려, 원근법 발명되기 전 작품
성 베네딕토(약 480~547)는 흔히 분도회라 불리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창시자이다. 성 베네딕토의 생애가 오늘날 잘 알려질 수 있게 된 것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 덕분이다. 그는 593년경 ‘이탈리아 교부들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이라는 책의 제2권에서 베네딕토 성인의 생애를 소상히 소개했다.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이 책을 쓸 무렵에는 베네딕토 성인의 제자들이 생존해 있었으므로 교황은 그들로부터 성인의 생애를 자세히 전해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구체적으로 전기를 집필할 수 있었다.
성 베네딕토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수도원장으로 있으면서 수도생활에 필요한 사항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베네딕토 규칙서를 만든 것이다. 그의 규칙서는 이전에 존재했던 규칙들을 참고하는 한편, 본인이 직접 경험한 수도원 생활을 정리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수도원이란 수감소가 아니었고, 출세를 위한 학교도 아니었으며, 단지 하느님을 찾는 이들의 가정이었다. 수도원에서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주님의 일터(divino ufficio)를 찬미하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기도, 독서, 개인학습, 노동으로 이루어졌으며, 규칙의 핵심은 가난, 청빈, 복종, 전례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로 이루어져 있다.
초기에는 베네딕토 수도회 규칙이 수도자들이 따르기를 원하던 여러 규칙 중의 하나였으나 샤를마뉴 대제(740년 경~814년)가 수도원 개혁을 단행하면서 베네딕토회 규칙을 정식으로 채택한 이후 그의 규칙서는 유럽의 많은 수도원에서 채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생애
성 베네딕토는 이탈리아의 누르시아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공부를 하기 위해 로마로 유학을 왔다. 그러나 로마에서의 세속적 삶에 실망하여 에시데로 은둔생활을 떠났으며 이때 그를 아꼈던 유모도 동행했다고 한다. 이 무렵 베네딕토가 행한 첫 번째 기적이 전해진다. 그 내용은 유모가 빵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체질하여 식탁에 올려놓았는데 체가 떨어져서 두 동강이 났다. 절망한 유모가 우는 것을 보고 베네딕토는 조각들을 모아놓고 기도를 올렸고, 기도를 마치고 일어났을 때 체가 완벽하게 수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베네딕토가 어려서 행한 이 기적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곳은 작지만 아름다운 집이다. 아이가 기도를 올리자 두 동강이 났던 체가 원상태로 복구되었고, 유모는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두 사람은 집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고, 왼쪽 옆에는 작은 침대의 일부가 보이는 침실이 있으며, 오른쪽은 현관으로 보이는 집의 입구가 보인다. 2층은 전형적인 14세기 고딕식 건축 모티프로 장식된 창들이 보이며, 그 너머에는 집 내부가 다소 복잡하게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얼핏 보기에는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다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집의 구조가 대단히 복잡해 보일 뿐만 아니라 집과 그 안에 있는 사람의 비례가 잘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서 있는 유모는 천장에 닿을 정도이고 홀 안에는 두 명만 있을 뿐이지만 공간이 꽉 차있을 정도로 비좁아 보인다. 건축물과 인체의 비례가 수학적 원근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눈대중에 의해 어림짐작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원근법이 발명되기 5년 전쯤에 그려진 것으로 원근법이 없었던 시절에는 이처럼 공간에 대한 개념이 대단히 추상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동화적 순수함이 느껴지는, 이른바 프리미티브 회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가톨릭신문, 2010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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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54. 성 베네딕토 III
샘이 솟게하고 독살 물리쳐
- 작품 해설 : 안드레아 만테냐, 〈베네딕토 성인〉(제단화의 부분), 패널에 템페라, 174×79 cm,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규칙서 상징하는 책과 노동 상징하는 곡식 든 성인의 노년시절 모습 르네상스 거장 만테냐 작
베네딕토(약 480~547)는 수비아코로 돌아와서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였으며 그의 명성을 듣고 많은 수도자들이 몰려들어 무려 12개의 수도원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들 수도원 중 두세 곳은 높은 바위 산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물을 길어오는데 어려움이 컸다. 이에 수도자들이 수도원을 옮기자고 요청했다.
어느 날 밤 베네딕토는 한 젊은 수도자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서는 오랫동안 기도를 드린 후 돌덩어리 세 개를 땅 위에 두었다. 다음날 아침 데리고 갔던 수도자에게 놓여진 돌을 치우고 땅을 파면 주님께서 그곳에 샘이 솟게 해주실 것라고 말했다. 수사들이 그곳에 가서 돌을 치우고 파 보니 과연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었다.
베네딕토 성인에 관한 또 하나의 일화를 소개하자면 피오렌초라는 수도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빵에 독을 묻혀서 베네딕토에게 보냈다. 성인은 평소 먹이를 주던 까마귀에게 빵을 주며 말했다.
“주님의 이름으로 이 빵을 들어 아무도 해치지 않는 곳으로 던지노라.”
까마귀가 날아가자 성인은 “이것을 집어서 멀리 버려라”라고 말했다.
까마귀는 3일 뒤 돌아와서 예전처럼 음식을 받아먹었다. 피오렌초는 성인 독살에 실패한 것을 알게 되자 이번에는 제자들의 영혼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수도원의 정원에 수도자들의 육체적 열망이 타오르도록 7명의 미녀들을 데려와서 노래하고 춤추게 했다.
이 광경을 본 성인은 제자들이 유혹에 빠질까봐 걱정이 되어 그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 했다. 발코니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피오렌초는 제자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했으나 발코니가 무너지면서 즉사했다.
마우로라는 제자가 베네딕토에게 “돌아오시오. 당신을 괴롭히던 자가 사망했소”라며 기쁜 소식을 알렸다. 소식을 들은 성인은 비록 악인이라 하지만 한 인간의 죽음을 제자가 기뻐하는 것을 보고는 몹시 슬퍼하며 마우로로 하여금 회개하게 했다.
이후 베네딕토는 오늘날까지도 수도원으로 유명한 몬테카시노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아폴로 신전을 개조하여 성당을 세웠고, 몬테카시노의 수도원에는 많은 제자들이 몰려왔다. 베네딕토는 그곳에서 생활하며 그 유명한 베네딕토 규칙서를 썼다.
베네딕토 성인은 자신이 사망할 날을 예언했으며, 죽기 7일 전 무덤을 열어둘 것을 명했다. 이 말을 마치자 열이 나고 아팠으며, 7일 후에는 기도소로 데려가 달라고 하여 성체를 영했다. 그리고는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양팔기도를 올렸으며, 기도 중에 영면했다.
이 장면을 두 제자가 지켜봤는데 한 사람은 방에 있었고 다른 사람은 멀리 있었다. 그들은 망토로 덮인 빛이 베네딕토의 방에서 동쪽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주님의 사랑을 받은 베네딕토가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베네딕토는 그 자신이 아폴로 제단을 헐고 만든 세례자 요한의 기도소(오라토리움)에 묻혔다. 그때가 서기 518년이었다.
베네딕토 성인은 프란치스코, 안토니오, 도미니코 성인과 더불어 수도회를 창설한 중요한 인물이지만 명성에 비하여 그를 소재로 한 그림이 의외로 많지 않다.
북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인 안드레아 만테냐가 그린 이 그림 속의 베네딕토 성인은 흰 수염의 노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베네딕토 수도회의 검은색 수도자 복장을 하고 있으며, 한 손에는 규칙서를 상징하는 책을, 다른 한 손에는 수도원에서 행해지는 수도자들의 노동을 상징하는 곡식 다발을 들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0년 11월 21일]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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