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를 구해 내셨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오래전, 정확히는 1998년쯤 되는 해, 나는 어떤 계기로 아홉달동안 매주 첫 금요일 성시간을 갖고자 어느 교우와 약속하고 시작하였다. 두세달인가 지난 후 그 교우는 갑자기 나오지 않았고 나 혼자서 나머지 기간을 채운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 자료를 찾아보니 첫금요일 성시간은 목요일이 지나는 자정에 갖는 것이 맞나보다. 어쨌거나 성시간 동안 기도서를 읽으면서 예수님의 메세지가 무섭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 내가 감당하기에는 벅차기도 하였지만 적어도 예수님께서 무슨 마음이셨는지,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슬픔을 간직하셨는지를 알 듯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예수성심상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리 오래 산 인생은 아니지만 나 자신과 내가족과 이 사회에 큰 과오없이 잘 지내온것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지나온 나 자신의 일생을 뒤돌아 보면 참 많고도 많은 사연과 고비를 겪었다. 하지만 이제 죽는다 해도 그리 서운하지 않을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것을 생각하면 그저 주님께 감사, 또 감사드려야 할 일이다.
이제 예수성심을 본받아 주님께서 내게 주신 어떤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으로 봉사하며 여생을 마치게 해 주십사 기도드린다.
예수성심의 영성과 공경, 위로 (상) - 피와 물이 흘러(요한 19,34)
윤양호 신부(교구청 사무처)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 19,34)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골고타산에서 임종하신 후, 어떻게 당신의 가슴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는가를 증언해 주는 요한 복음의 말씀입니다. 당신의 가슴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그분의 사람이 되심, 수난, 죽음, 성체성사를 통해 보여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성심에 대하여 그 공경의 의미와 목적, 역사적 배경과 유래, 메시지 등의 순서로 함께 묵상하기로 합니다.
1. 예수성심 공경의 의미, 목적
교회의 전통 안에서 교부들은 예수님의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물(요한 19,34)은 우리의 인간과 세상을 살리는 구원(救援)의 생수(生水)로 보았는데, 이 예수님의 마음을 초자연적 은총의 근원(根源)으로 본 것입니다. 마치도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탄생할 수 있었듯이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새 하와인 교회가 탄생했다고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예수성심 공경의 목적은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예수성심과 합하여 사랑으로 보답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신명 6,5),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마태 22,37-38; 마르 12,29-30)는 첫째 계명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성심 공경은 우리 인간을 위해 당신의 삶과 생명을 내어주신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가슴의 피와 물을 쏟듯이, 우리도 그렇게 우리 자신들을 예수성심께 봉헌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의 뜻을 우리의 믿음, 소망, 신뢰, 충성, 사랑으로 따를 수 있을 때, 또한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은혜와 사랑을 입게 되지요.
우리는 예수성심 공경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끝없는 사랑, 십자가의 사랑, 구원의 사랑에 응답하면서 사랑의 기도, 희생, 보속, 실천 등으로 살고 보답하고자 하려는 것입니다.
2. 예수성심 공경의 역사적 배경, 유래
구약에서, 특히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아서에서는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을 말합니다. 즉 하느님의 사랑은 백성에 대한 임금의 사랑,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신약에서, 특히 요한 복음(7,37-39; 19,33-37)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늑방 옆구리에서 구원의 생명수가 계속하여 온 세상으로 흘러내릴 것을 약속합니다.
교부들, 특히 히뽈리뚜스, 이레네우스, 유스티누스, 치쁘리아누스 등은 예수의 마음에서 흘러내리는 세상을 위한 구원의 생명수를, 성령과 함께 예수성심을 초자연적(超自然的) 은총(恩寵)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도 아담의 늑방 옆구리에서 하와인 이브가 나올 수 있었듯이, 새 아담인 그리스도의 늑방 옆구리에서 교회가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중세기(1100-1350)에는 예수의 심장(마음)을 은총의 샘으로 보는 교부들의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공경대상으로 삼는 경향으로 커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안셀모, 벨라도, 성 보나벤투라, 성녀 젤뚜르다, 대 알베르또,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등은 모두 중세기 예수성심의 대표적 공경자들이지요.
그런데 초세기부터 중세기를 거치는 동안에 주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 공경되었던 예수성심 공경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널리 보급된 것은, 프랑스 방문회(The Visitation Order)의 수녀인 마리아 말가리다 알라콕(St. Margharita Alacoque) 수녀에게 내리신 예수성심의 메시지 덕분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 말가리다 수녀에게 1673년부터 1675년까지 만 2년 동안 70회나 발현하시어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마리아 말가리다 알라콕 수녀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성심은 무한한 사랑의 원천이며 모든 이가 사랑으로 동화되기를 바라신다.
(2) 예수성심을 통해 나타나는 하느님의 사랑은 또한 인간의 보답하는 사랑을 바라고 갈망하신다.
(3) 세상의 죄와 악을 배상(賠償)하는 탁월한 방법으로 영성체와 성시간을 바치어라.
(4) 성체성혈대축일 후 다음 금요일을 예수성심대축일로 제정하고, 성시간과 영성체를 하라.
드디어 1856년에 교황 비오 9세는 예수성심축일을 정하였고, 1899년 교황 레오 13세는 전 세계를 예수성심께 봉헌할 것을 선포했으며, 그 후 비오 10세는 해마다 예수성심께의 봉헌을 갱신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1888년 제7대 조선 교구장 블랑 백주교에 의하여, 한국교회를 예수성심께 봉헌합니다. 한편, 마리아 말가리다 알라콕 수녀에게 1675년 6월 16일에서 20일 사이에 발현하신 네 번째 내용에 따라서, 교회는 성체성혈 후 다음 금요일을 예수성심대축일로 정하였는데, 이는 예수성심이 성체성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후, 예수성심대축일을 교회축일로 설정한 지 만 100주년이 되는 해인 1956년에 비오 12세는, 예수성심 공경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 회칙인 ‘물을 퍼낼 지어다(Haurietis Aauas)’를 반포하면서 예수성심 공경은 더욱 권장되어 갔습니다.
3. 예수성심의 메시지
나는 사랑이다. 내 성심은 그침 없이 타는 불을 제어하지 못한다. 나는 영혼을 위하여 살고 영혼을 사랑한다.(예수성심의 메시지)
위의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친히 요세파(Josef Menendez) 수녀에게 들려주신 말씀인데, 그녀는 스페인인으로서 예수성심회에 들어가 수덕(修德)하고 공로(功勞)를 쌓다가 3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요세파 수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예수성심께서는 당신의 극히 겸손한 종 요세파 수녀에게 은총으로 감오(感悟)시켜 주신 예수성심 메시지의 이 책을 펴내 널리 알리게 된 것을 기뻐하실 줄로 의심치 않습니다. 이 책이 많은 영혼에게 유익을 주고, 누구나 가련한 죄인인 우리 모든 이가 천주성심인 예수성심께 신뢰를 더욱 가지게 될 것입니다.”
4. 예수성심께 공경과 위로인 성시간, 영성체 등의 신심행사
1674년 7월 2일(?)의 발현에서 예수께서는 마리아 말가리다 성녀에게 살아 움직이는 당신의 예수성심을 보이시면서 보속의 방법으로 자주 영성체(특히 매달 첫 금요일)하고 성시간의 기도를 바치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첫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내가 겪은 극심한 슬픔(성 목요일)에 너를 참여시키겠다.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는 일어나 한 시간 동안 나와서, 성부의 의노(義怒)를 풀어드리고 죄인들의 구원(救援)을 위하여 보속(補贖)하며 성시간을 가져라.”
예수님께서는 게세마네 동산에서 당신의 수난을 목전(目前)에 두시고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간절하게 말씀하시었습니다. ‘기도할 것을, 기도해 줄 것을, 그분과 함께 그리고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기도해 줄 것을…’ “나와 함께 단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마태 26,4)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마르 14,38)
예수성심의 말씀과 요청에 따라서, 우리는 성체를 자주 모시고, 성시간을 가지면서 사랑으로 불타는 예수성심을 공경하고 위로해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성심의 메시지에 따라서, 자주 미사에 참여하여 영성체를 하고, 특별히 매달 첫 금요일의 영성체는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울러 성체 예수님을 흠숭하고 공경하며 위로해 드리는 성시간 전례도 자주 거행함으로써, 세상과 우리 인간을 위해 불타는 하느님 마음인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도 위로해 드리고,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도 많이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압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마음은 얼마나 많이 죄(罪)와 악(惡)에 기울어지고, 생명경시(生命輕視) 풍조(風潮)가 만연되어 있으며, 물질숭배(物質崇拜) 물질만능(物質萬能) 사조(思潮)가 퍼져 있다는 것을, 이 세상 곳곳에,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들의 마음속에도…. [쌍백합, 제14호, 2006년 가을호]
예수성심의 영성과 공경, 위로 (하) - 피와 물이 흘러(요한 19,34)
5. 예수성심의 영성과 그 실천을 위하여
예수성심의 영성은 사랑이시고, 우리 인간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사랑으로 불타는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성심은 마리아 말가리다 알라콕에게 발현하시어 간절하게 말씀하시듯 하시었습니다. ‘내 마음을 위로해 다오. 세상의 죄와 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내 마음을 위로해 다오. 자주 미사에 참여하여 영성체하고, 성시간을 바쳐야 하리니…’
우리는 이제 어떻게 예수성심 영성을 실천하고, 또한 공경하며 위로드릴 수 있을 것인지 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기로 합니다.
(1) 첫 금요일에는 꼭 미사하고 영성체하기
(2) 성시간 (가능한 첫 목요일은 꼭…)
(3) 예수성심의 상을 특별히 공경
(4) 미사와 성무일도가 따르는 축일 지키기
(5) 개인, 가정, 본당, 공동체, 국가 등을 예수성심께 봉헌하는 행사
(6) 가능하다면 자주 아침미사에 참여하고 영성체하면서 하루를 예수성심께 봉헌
(7) 삶의 은총과 가정에 평화를 청하고, 성심상과 성심상본을 공경하며, 고통과 근심 중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살아서든 죽어서든 예수성심께 의탁하며(예수, 마리아, 요셉…), 성심께 모든 일에 강복을 청하고, 죄인들에게 자비와 냉담자들의 돌봄을 기도하며, 아울러 열심한 영혼들은 더욱더 완덕과 성덕으로 나아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성심은 성체성사의 원천이고 성체성사는 예수성심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신비(神秘)입니다. 성체성사와 함께 예수성심의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를 낳고 기르셨으며 그분의 수난에 함께 하셨던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또한 이 세상에서 또 다른 마리아로 살아가라고… 예수님의 그 모든 것들을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말씀을 실천하며 살았던 어머니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고,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을 본받으라고… 그래서 우리는 예수성심께 드리는 공경과 함께 마리아의 성심께 드리는 공경이 또한 합당하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성심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실천하였던 분은 마리아시지요.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그분의 첫 번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사랑의 세 가지 - 에로스(인간적 사랑), 필로스(친구간의 우정), 아가페(하느님적 사랑) - 를 말해왔습니다. 이 중에서 에로스는 비 그리스도교 문화인 그리스문화적인 사랑인데, 올라가는 사랑, 탐욕적인 사랑입니다. 그리고 아가페는 그리스도교 문화인데, 내려오는 사랑, 주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에로스가 올라가는 사랑, 탐욕적인 사랑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수록, 자신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줄어들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며, 다른 사람을 점점 더 염려하고 자신을 내어주며, 다른 사람을 위하여 존재하게 됩니다. 아가페의 요소가 점점 스며들게 되는 것이지요.
한편 아가페가 내려오는 사랑, 주는 사랑일지라도, 우리 인간은 줄 수만은 없으며 받기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사랑을 주고 싶은 사람이라면, 사랑을 선물로 받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는 샘이 될 수 있습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8)
그러한 샘이 되려면, 그 샘의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새 물을 끊임없이 마셔야 합니다. 그 끊임없는 새 물이 바로 예수성심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물입니다.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 19,34)
6. 예수성심을 공경하고 위로 드리는 기도생활의 실제
그러면 우리는 위에서 말씀드린 예수성심 공경과 위로의 신심생활뿐 아니라,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의 방법들로도 예수성심을 공경하고 위로 드리는 기도생활을 실천해 갈 수 있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예수성심께 천하만민(天下萬民)을 바치는 기도를 드립니다.(예수성심성월 기도문 참조)
둘째, 예수성심께 자비를 청하는 기도를 바칩니다.
셋째, 예수성심 호칭기도를 바칩니다. [쌍백합, 제15호, 2006년 겨울호]
예수성심성월 특집 (하) 예수성심 신심의 역사와 의미
홍수처럼 쏟아지는 끝없는 사랑의 은총
예수성심 신심의 역사
예수성심 공경은 성경에 근거하고, 교부들과 신학자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인 교회의 전통적 신심이다. 초세기의 여러 교부들은 창에 찔린 예수의 심장(요한 19,34)에서 구원의 물과 피가 흘러내렸다고 해서 예수성심을 성령과 함께 초자연 은총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여기서 성심은 신체의 중요 기관인 심장만을 따로 떼어 말함이 아니라 감정과 사고, 의지의 중추기관으로서 그리스도의 인격을 뜻한다).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는 죄인을 씻고 죽음에서 소생시키는 세례와 당신 백성을 먹여 기르는 성체를 상징하며, 이 둘은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은총의 샘(성사의 원천)으로 이해되었다.
예수님은 1673년 12월 27일부터 1675년 6월까지 말가리타 수녀에게 70회 발현하여 당신 성심에 관한 메시지를 주셨고, 그후 여러 교황들은 이를 받아들여 공적(전례적) 공경을 허락하고 마침내 1856년 교황 비오 9세는 성심축일을 온 교회 축일로 선포하였다. 성심축일을 교회 축일로 삼은지 100주년 되는 해인 1956년에 비오 12세 교황은 예수성심 공경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 회칙 ‘물을 퍼낼지어다’(Haurietis Aquas)를 반포하여 성심 공경을 더욱 권장하였다.
예수성심은 말가리타 수녀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내 거룩한 마음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내 성심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홍수를 퍼부어 성덕과 구원의 은총으로 그들을 부유하게 하고, 마침내 멸망의 구렁에서 건져내려 한다. 나는 너를 부당하고 무식한 그대로 간택하여 나의 계획을 완수하려 한다.”
예수께서는 교회가 특별 축일을 제정할 것을 요구하시며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다. “나는 성체 축일 8부때 금요일을 내 성심을 공경하는 날로 정하기를 원한다. 그날 영성체하고, 내가 제대 위에 현시되는 동안에 내가 당한 모든 능욕을 보상하는 영혼들은 나의 성심에서 사랑의 은총을 홍수처럼 풍부히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성체 축일 후 금요일에 지내는 예수성심 축일(사제성화의 날)의 근거이다.
예수성심과 성체성사, 성모성심
예수의 성심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자신을 남김없이 우리에게 주시는 성체성사로 드러났다. 우리는 먹는 힘으로, 즉 그리스도를 먹음으로 그분의 생명-불사불멸하시는 하느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된다. 예수성심은 성체성사의 원천이고, 성체성사는 예수성심의 가장 완벽하고 탁월한 표현이다. 성체성사는 제대상에서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이다. 당신 자녀들을 영적으로 배불리어 영원히 살리고자 하는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이다.
예수성심께서 베푸신 또 다른 큰 은혜는 당신 어머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주신 것이다. 성모는 당신 아드님과 가장 완벽하게 결합하신 분이므로 당신의 마음은 아드님의 마음을 가장 완전하게 드러낸다. 성모의 성심은 인류의 죄로 고통받으시는 예수성심과 일치하고 당신 아드님의 구속사업에 동참하면서, 우리에게 당신의 모성적 자애를 끝없이 베푸신다. 따라서 예수성심께 드릴 공경과 함께 마리아의 성심께 드릴 공경이 합당함을 교회는 가르친다.
한국교회 신자들과 예수성심 신심
한국인의 일반적 종교 심성은 예로부터 토착화된 무교(巫敎, 샤머니즘)의 현세기복 및 신비주의에 깊이 젖어 있다. 천주교 신자들에게도 이러한 면을 흔히 찾아보게 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복음을 믿고 그분의 수난과 부활로써 마련된 구원의 은총을 받음으로써 영생을 얻는,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영복(永福)을 추구하는 초자연종교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고, 그분을 통해 성부를 사랑할 때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게 된다. 예수성심 공경은 ‘하느님 사랑’의 첫째 계명을 구체적이고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이다. 성심께서 약속하신 은혜가 영생과 직결되는 은총일 뿐 아니라 갖가지 현세적 축복임을 생각할 때 ‘현세 기복적 종교 심성’에 젖은 한국 신자들에게는 예수성심 공경이 실로 구원과 축복의 길임이 확실하다.
특히 성시간 기도는 겟세마니에서 당하신 그리스도의 지극한 심고(心苦)와 십자가상 죽음에 동참함으로써 예수의 성심을 위로하고, 우리와 세상의 죄를 배상하는 보상기도이므로 회개와 생활 개선이 절실히 요구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효과적인 기도가 될 것이다.
교황께서는 예수성심 대축일을 ‘사제들의 날’로 정하시고 되도록 이 날에 사제서품식을 하도록 권장하였다. 사제는 바로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제자이므로 그 누구보다 먼저 예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본받아 지니기를 당부한 것이다.
교회의 전례 축일인 예수성심 대축일에 각 가정과 본당과 교구를 성심께 봉헌하고, 맞갖은 신심행위 등을 통해 이 봉헌을 해마다 갱신함이 우리의 신앙을 쇄신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주님께 더 큰 영광을 드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또한 이것이 교회가 제정한 전례 축일과 성월의 의미를 되찾는 길이 될 것이다.
예수성심에 관한 역대 교황님들의 말
- 비오 9세
“교회와 세상이 희망을 둘 곳은 예수성심뿐이다. 우리의 모든 불행을 낫게 하실 이는 예수성심이시다.”
- 비오 10세
“위험 중에 있는 인류의 유일한 피난처는 예수성심이다.”
- 비오 11세
“예수성심 신심은 모든 신심의 종합이요, 더욱 완전한 생활 규범이다.”
- 비오 12세
“예수성심 신심은 그리스도교 신심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요, 모든 신자가 질 의무(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다.”
- 비오 13세
“예수성심 공경은 그리스도 교회의 가장 탁월한 신심이다. 모든 희망을 두어야 할 곳은 예수성심이고, 구령을 위해 기댈 곳은 예수성심이다.”
- 예수의 성심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자신을 남김없이 우리에게 주시는 성체성사로 드러났다. 예수성심은 성체성사의 원천이고, 성체성사는 예수성심의 가장 완벽하고 탁월한 표현이다.
- 예수성심과 일치하는 성모성심은 우리에게 당신의 모성적 자애를 끝없이 베풀어 주신다.
- 우리는 그리스도를 먹음으로써 그분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된다.
[가톨릭신문, 2010년 6월 20일, 정리 편집부, 도움말 : 이홍근 신부]
예수성심성월 특집 (상) 특별기고/ 예수성심 신심과 구원 신비
불꽃같은 이웃사랑은 곧 예수 마음
이홍근 신부(원로사목자·전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인간은 본래 하느님 착하심 지니고 있어
오직 예수 마음과 하나 될 때 평화 이뤄
말씀 · 성체성사로 예수성심과 결합해야
오직 예수 마음과 하나 될 때 평화 이뤄
말씀 · 성체성사로 예수성심과 결합해야
교회는 매년 6월을 예수성심성월로 지낸다. 예수성심 공경은 신앙생활을 심화하고 성덕을 닦는데 가장 효과적이며 탁월한 신심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예수성심성월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예수성심과 성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두 번에 걸쳐 특집을 마련한다.
우리가 해마다 6월 예수성심성월을 지내는 것은 오직 예수의 마음(성심)을 배워서 예수님처럼 살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현세를 사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모범이요,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갖춘 후 마침내 그리스도와 함께 천상의 영광을 누리자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를 닮는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마땅히 하느님을 닮아 거룩해져야 하고, 하느님의 친자요 독생자이신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성심성월을 지내면서 먼저 ‘예수의 마음’을 알아야 예수님을 본받을 수가 있다.
마음의 정체
우리가 예수성심을 배우려면 먼저 ‘마음(心)’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마음’이 무엇인가. 어떤 것을 ‘마음’이라 부르는가. 보통 ‘마음’이란 ‘의식, 감정, 생각 따위의 정신작용’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즉 마음은 인격의 주체이다.
마음에 관해서는 ‘마음 닦는 종교’로 알려진 불교의 설명을 참고하면 마음의 정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마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망심(妄心, 그릇된 마음). 갖가지 탐욕, 이기적인 생각, 선입견, 고집, 좁은 식견, 불만(욕구불만), 스트레스, 콤플렉스(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복합감정), 이상 성격, 질투, 시기, 원한, 증오심 등으로 마음이 산란하고 안정과 평화가 없고, 삶의 기쁨과 활력이 없는 경우, 이를 망심, 모멸심 또는 번뇌심이라 부른다.
2) 진심(眞心). 먼저 말한 망심과는 반대로 탐욕이나 산란한 정서나 어리석은 생각이나 분심, 잡념, 근심, 걱정 등이나 스트레스, 콤플렉스가 없고 마음이 맑고 고요하고 밝아서 언제나 안정과 평화를 누리고 내적인 기쁨을 끝없이 맛보며 모든 이와 사물에 대한 사랑, 즉 자비심이 넘치는 마음이다. 이 진심을 무심(無心) 또는 청정심(淸淨心)이라고 한다(무심이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부정한 것, 산란한 것이 전혀 없음을 뜻함).
사람의 마음은 본래 하느님의 모상이라 맑고 고요하고 티 없고 아름답고 빛나며 그 무엇으로도 더럽힐 수 없으며 형체가 없는 가운데서 만유를 포용한다. 즉 우주 공간보다도 넓고 크다. 그래서 그 무엇으로도 마음을 채울 수 없다. 세상 그 어떤 것을 가져도 만족할 수 없다. 오직 마음을 만드신 하느님만이 우리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다.
본래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이기심으로, 즉 탐하는 마음으로 더러워졌고, 욕구불만으로 인해 (마음이)불안하고 산란해졌으며, 욕심에 눈이 멀어 선악을 분별 못 하게 된 것뿐이다. 결국 마음의 눈이 멀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이를 무명(無明), 즉 무지(無知)라고 한다. 결국 무명이 진리의 빛을 가리어 소경으로 만든다. 욕심에 눈이 멀면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선악을 판단하지 못하므로 걷지 말아야 할 길, 그릇된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때 사람은 본래의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하느님의 모상인 만큼, 하느님의 착하심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영혼의 두 가지 기능인 지성으로 진리를 찾고 깨달을 뿐 아니라, 의지로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할 수가 있다. 이때 인간은 인간다워지는 것이다.
마음을 거룩하게 하는 법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 할 일이 있다.
첫째, 계명을 지켜 탐욕을 없애고(욕심을 억누르고) 둘째, 기도 즉 명상생활로써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즉 분심 잡념 걱정 근심을 잠재워 고요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마음이 밝아져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된다. 이 하느님의 현존과의 일치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스도교 신비가들, 관상가들은 깊은 관상기도를 통해 초자연 빛을 받아 영혼이 밝아지고 눈이 열려 하느님의 세계를 보고 진리를 속속들이 깨닫게 된다. 먼저 저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서야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구원의 신비를 깨달았듯이, 또 스테파노 부제가 돌에 맞아 순교하게 될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오른편에 인자(그리스도)가 서 계시는 것을 본 것’(사도 8,50)처럼, 하느님의 은총인 천상의 빛으로 마음 눈이 열릴 때 비로소 천상의 새 세계를 보고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구원의 신비를 맛본 후로는 세상 것-현세의 부귀영화-은 하잘것없어 보이고 오직 만선만덕의 근원이요, 진리와 생명의 샘이신 하느님만을 찾고 맛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참 그리스도인이 되고, 참된 하느님의 자녀요 천상도성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 이때 영혼의 끝없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 이 세상에서 이미 천국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들어가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이요 사람이신 예수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누구나 예수성심을 맛보고, 성심 안에 살 때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누구나 예수성심처럼 완덕을 지니고 특히 완전한 사랑과 자비를 온 세상에 나타내 보일 수가 있다.
하느님의 사랑(창조와 구속)
사랑은 바로 내가 지닌 모든 좋은 것을 내가 사랑하는 상대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행위이다. 하느님은 창조를 통해 우리에게 갖가지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살리고 오곡백과와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제공해주신다(마태 6,25-34). 마침내 당신 아드님을 통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당신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셨다(요한 3,16·35-36).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무한하여 그 무엇으로도 막거나 끊을 수 없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하느님의 숨결, 즉 생명에서 나온 하느님의 자녀요 하느님의 은총 속에 살다가 하느님(인간생명의 근원)께로 되돌아가야할 존재, 즉 피조물 중에 가장 귀중한 존재이다.
성심의 호소
예수 성심께서는 “자녀들아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지 너희는 알지 않는가. 내가 너희를 위해 행한 일들을 보라. 내 마음이 얼마나 뜨겁게 불타는지를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바쳤거늘 너희에게 또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으랴”라고 말씀하신다.
1675년 6월 성체축일 8부중 금요일에 예수성심께서 마르가리타 마리아 수녀에게 나타나셨을때 당신 불타는 성심을 보이시며 “보라 사람들을 이렇듯 사랑했고, 그들에게 이렇듯 큰 은혜를 베풀었건만 이 무한한 사랑에 대해 오직 배은망덕만 당하는구나. 내 성심은 무관심, 무례를 참고 때로는 특별한 사랑의 유대로서 내 성심과 밀접히 결합된 이들로부터 이 모든 능욕을 당하는 구나”라고 애달파 하셨다.
사랑은 사랑으로만 보답할 수 있다. 우리가 그 무한한 사랑에 보답하는 길을 예수께서는 성경을 통해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켜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너희 사랑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요한 13,34-35, 죽으시기 전 최후만찬에서 하신 유언).
예수님은 만선만덕의 근원이요, 행복의 원천이자 영원으로부터 스스로 완전한 행복을 누리시는 분, 그 어떤 것도 부족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자족자요 충만자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나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남들에게 구체적으로 표현하라고 하신다.
성심의 당부
예수께서는 너희 형제를 너 자신처럼 소중히 여길 것이되, 특별히 고통받고 슬퍼하는 이들, 우리 주위에서 비천하게 사는 형제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힘껏 자선을 베풀라 하신다. 이웃사랑은 곧 그리스도 당신에 대한 사랑이다(마태 25장 최후심판 장면).
또한 아직 구원의 진리를 모르고 사는 수많은 이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도 구원받아 영생을 누리도록 당부하신다(승천시에 내리신 마지막 당부).
예수께서는 당신 형제요 제자인 우리가 당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세속의 갖가지 죄악에 물들지 않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빛과 소금, 향기가 되어 세상을 거룩하게 하는 도구가 되라 하신다.
예수께서는 누구나 당신 제자가 되려면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일상생활에서 오는 갖가지 고통을 달게 받고 극기 절제 희생 보속 등으로 십자가의 신비를 생활화하라고 당부하신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는 하느님, 그리스도를 직접 뵈올 수가 없고 오직 성경말씀 안에서, 또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언제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묵상한 것을 실천하여 세상에 모범이 되고, 또 예수성심의 정수(精髓)인 성체성사(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지극히 존경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모셔야 한다. 이것이 예수성심과 결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결론
우리 마음이 예수성심을 얼마나 닮았느냐에 따라 우리가 하느님의 참 자녀인지 아닌지가 판가름 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자 되어야 하느니라”(레위 19,2).
마르가리타 마리아 수녀에게 나타나신 예수성심은 태양보다 빛나고, 수정처럼 맑고 투명하고, 성심 안에 깊은 상처가 박혀있고, 성심 주위에는 가시가 둘러싸고 있고, 그 성심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이 예수성심처럼 하느님의 사랑과 지혜로 빛나고, 수정처럼 맑고 흠도 티도 없어야 할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함, 즉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세상의 죄악과 싸울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불꽃같은 사랑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이때 비로소 우리 마음이 예수의 마음이 되고, 우리의 구원은 온전히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는 결코 그리스도를 닮을 수가 없으므로 언제나 하느님의 은총을 청해야 한다. 즉 ‘예수성심이여, 우리 마음을 당신의 마음과 같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끊임없이 바치면서 예수성심을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가 예수님을 닮게 되는 것이다.
[가톨릭신문, 2010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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