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가 몇개 왔는데 워낙 가물가물한 기억이라서 미안하기도 하고...하여
간단하게 학천국민학교 시절 야그를 할까 합니다.
나는 추산봉의 북쪽 줄기 등성이에 위치한 유선암이라는 암자에 살았읍니다.
당시 학교에서는 봄 가을로 소풍을 가는데 대개는 우리집으로 오기 때문에 집에서 기다리면 재미가 없어
일부러 학교까지 갔다가 소풍행렬을 따라 집에까지 오는 황당한 짓을 하였었지요.
당시 소풍을 갈 때에는 학교에서 밀가루 빵(동그란)을 나누어 주었고 도중에 먹지 말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먹도록 주의를 받았으나 난 참지 못하고 도중에 한입 먹다가 김재수 선생님한테 혼난 기억이 있읍니다.
아뭏튼 학천국민학교에 입학 할 당시 내 키가 101cm였는데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하여 나를 데리고 가신
아버님께 교장선생님께서 "너무 작고 어린 아이인데 그 먼거리를 과연 다닐 수 있을것인가... "하고
걱정하였으나 간단한 테스트에 통과하여 무사히(?) 입학하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당시 학교에 다니던 루트는 추산 -> 어림을 지나 논길로 가는 방법과 칠암->학천을 거쳐 큰 길로 가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때 그때 가고 싶은 데로 다녔던 생각이 납니다.
아마 그 때 나랑 같이 다녔던 친구가 몇 있었던 모양인데 내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그 친구들에게는
정말 미안할 따름입니다. 칠암에 사는 서정수는 단짝이었는데 후에 3학년 1학기 초 고수남 초등학교로
스카웃(?)되어 둘 다 전학을 가버린 이유로 아마도 친구들과의 기억이 가물 가물 한것 같습니다.
당시 그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깡다구는 있었던지 맞고 다니지는 않았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천쪽은
텃세가 심하여 지나다니기가 무섭기는 하였지요 ㅎㅎㅎ
당시 학천은 권씨집성촌이었던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한번은 나보다 키큰 누군가에게 겁없이 결투신청을 하였다가 코피 터진 적도 있읍니다. ㅋㅋㅋ
지금 내 턱 밑을 자세히 살펴보면 큰 흉터가 있는데 그 흉터는 운동장 앞에 있는
늑목(당시에는 나무로 만든것이었을걸요)을 하다가 떨어져 생긴 것입니다.
그 늑목의 하단 받침대에는 돌출된 볼트가 있었는데 거기에 턱이 찔려 찢어진것이지요.
피가 낭자한체 교무실로 실려가 책상위에 거치되어 몇바늘 꿰매는 대수술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에고 말썽쟁이 ....
당시 나름대로는 공부를 곧 잘 하였는지 일제고사를 치르면 상도 받고(자랑쟁이)
음악시간에는 이반 저반 불려다니면서 노래도 부르고... 나름대로는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한 것 같은데
거주지가 고수면이어서 행정구역상 초내분교로 다녀야 한다는 명분 아래 당시 초내분교 오종문 선생님의
집요한 공작(ㅎㅎㅎ)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지요.
대략 여기까지가 학천국민학교 시절 기억입니다. 정말이지 전화를 준 친구나 쪽지를 준 친구들한테는
미안하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얼굴도 생각이 나지 않고 같이 놀던 기억도 어렴풋하여 맞장구를
치지 못함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제 생활 자체가 워낙 정신없는 터라 자주 연락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렇게 인터넷으로
나마 잠시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사죄하렵니다.
참고로 저는 거주지가 후암동이고 직장은 방배동인데 건축설계일을 하고 있읍니다.
건축설계 하실 일 있으면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ㅎㅎㅎ
친구 여러분 이제 가정이 안정되어 손주손녀를 보는 시기지요
행복하시고 건강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남산 밑에서 이상행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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