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철도 역사가(歷史家), 남북 역사(驛舍) 건축가 이상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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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철도 역사가(歷史家), 남북 역사(驛舍) 건축가 이상행

효효입력 : 2019.11.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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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 아키텍트-10] 서울 남영동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컴퓨터 화면을 들이밀었다. 한옥 설계도면이 전후 좌우 위아래로 입체적으로 돌려가며 움직였다.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설계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디테일 도면, 재료의 질감 등 BIM 방식은 건축가가 완벽하게 시공자를 설득하여 품질을 높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이상행 건축가는 2008년 영국 런던의 국제 BIM건축 경기 대회에서 BIM 설계 방식의 비정형 호텔 디자인으로 수상했다. BIM이 3차원 캐드에 그친다는 선입견을 없애면서 BIM이 건축 이외 분야와의 협업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마당이었다.

 

책이 가득한 서가로 비좁아 보이는 사무실에서 나와 자리를 잡고, 회사 이름이 왜 토마스인지부터 물었다. 토마스는 가톨릭에서 건축가와 목수의 수호성인이다. '의심 많은 사람'이란 뜻의 'a doubting Thomas'란 관용어에 등장하는 토마스는 사실 굳은 믿음과 용기가 돋보이는 성인이다. 위경(전거가 분명하지 않아 성경에 수록되지 않은 문헌) 중 '토마스 행전'에 따르면 그는 서기 52년 남부 인도를 방문해 복음을 전하고 7개 성당을 세웠고 궁전 짓는 일을 했다.

 

이상행 토마스는 철도청에서 건축직공무원으로 18년을 근무했고, 1995년부터 2011년까지 '혜원까치' 건축사사무소에서 16년간 근무 후 '토마스건축사사무소'를 2011년 설립했고, 대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지금은 사라진 박정희 시대 국립 철도고 건축과 출신이다. 철도고 졸업 후 임용 되어 철도청에서 맡은 일들은 그의 기대를 미치지 못하여 공직생활을 접고 건축사사무소로 진출하였다. 건축사로서 설계일을 계속하면서 부족하다고 느낀 인문적 소양을 갖추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의 스승은 궁궐건축의 대가로 알려진 김동욱이다. 그가 접한 건 건축이 아니고 사학이었다. 잠시 망설였으나 결국 한국 근대 철도건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학위를 하면서 용산철도공장과 부산철도공장에 주목했다. 용산철도공장은 개발압력에 밀려 이미 철거되었고 부산철도공장은 1904년 초량에 설립돼 1930년 범일동으로 이전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인데 6·25전쟁 당시 미군 765철도공작대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일제감점기에 지어진 철골조공장과 톱날형 지붕을 공장 등 사료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 고스란이 남아 있어 이의 보존필요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금강산을 방문해 '너절한 남측 시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 싹 들어내(고 새로 건설하)라'고 했다는데, 그 시설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ㄷ자 형태로 배열 된 컨테이너 박스에 지붕을 씌워 만든 관광객 임시숙소 시설일 것이다'고 말한다. 이상행은 북측 지역의 개성역과 금강산역을 비롯한 6개 역사를 설계했다.

 

건축가 이상행이 설계한 금강산역

▲ 건축가 이상행이 설계한 금강산역

이상행은 2007년과 2018년 두 차례 북한철도 조사단(건축분야전문가)으로 참여했다. 2007년 12월 경의선(북측 용어로는 서해선) 개보수 작업과 2018년 남북철도공동조사가 목적이었다.

 

이상행은 대중교통환승 중심의 교통체계인 TOD(Transit Oriented Development)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철도는 역을 위해 존재한다. 역사는 점이고, 철도는 선이다." "북한의 철도역사를 TOD 중심으로 개량하거나 신설하고, 대중교통수단의 확충이 뒷받침된다면 북한의 경제 발전을 가속화하며, 통일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지난 4월 국회의원 회관에서 '북한교통공간의 발전방향'이라는 주제의 내용이다.

 

2018 남북철도공동조사시 그는 판문역에서 손하, 개성역을 거쳐 평양을 갔고, 대동강과 청천강 철교를 종전 후 최초로 걸어서 건넜다. 신의주까지 갔다가 평양에서 다시 남측 지역으로 내려왔고 동해선 조사를 위해 남측 제진역에서 금강산역을 거쳐 안변, 원산, 함흥, 청진 그리고 두만강역까지 갔다. 그는 남북연결의 세 축 중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경원선에도 관심이 많다. 분단 전에 이미 철원역에서 내금강역까지 전기기관차가 다녔다고도 한다.

 

금강산역을 설계할 때는 개보수 대상인 금강산청년역에 남아 있던 희미한 판타지 풍경벽화를 도예타일 작업으로 되살렸다. 동해바다와 금강산이 어울러진 신선계(神仙界)를 표현했다. 역사 전면은 반지하층에 해당하고 뒷면이 지상층이다. 뾰족하게 솟은 세모형 지붕들은 금강산 1만2000봉을 상징하며 곧게 뻗은 기둥과 홈통은 금강산의 폭포를 형상화한 것이다.

 

철도 건축가는 역사가 지어지는 곳, 철도가 지나는 지역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그는 "북한은 평양이다. 평양이 곧 북한"이라면서 "한반도의 환서해 경제벨트에서 평양은 서울에 이어 한반도 제2의 도시가 되어 세계의 중심이 된다"고 단언한다.

 

"우리는 서울이라는 세계적 도시를 운영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개선해나가면서 발전하고 변화했다"며 "거대 도시 서울을 운영한 경험으로 평양의 도시공간을 개편한다면 평양은 세계적으로 모범적이고 쾌적하며 친환경적 도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직장생활과 독립 건축사사무소 전체를 통해 그가 설계한 역사들은, 서울의 응봉역사, 한남역사, 한티역사, 장항선의 (신)판교역사, 부산역사의 대합실 등이 있다. 한남역사는 대로변에서 노출이 되지 않는다. 역으로서 최소한의 기능만을 부여한 미니멀리즘 건축물이다. 판교역사는 지역이 철새 도래지라는 특성을 살렸다. 종교 건축에나 쓰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천정에 적용해 자연 채광을 역사 안으로 끌여들였다. 부석사 가는 길목 풍기역은 새로운 형태의 홈지붕 디자인을 시도했다. 팔각정지붕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모양새다.

 

건축가 이상행이 설계한 장항선 판교역사

▲ 건축가 이상행이 설계한 장항선 판교역사

그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공적개발 원조사업에 참여해 아프리카 알제리, 세네갈, 앙골라, 콩고, 탄자니아, 우간다, 짐바브웨 등의 건축 프로젝트에도 관여했다. 콩고의 수도 킨샤사는 인구 1000만명의 거대 도시이나 고층 건물이 없는 저밀도 지역이다. 그는 킨샤사 근교 농촌주택에서 유리를 주로 사용한 현대건축의 '이중 외피' 원류를 보았다. 교외 농촌 주택들에서는 흙벽을 쌓아올리고 동서측 외벽 바깥으로 약 60㎝ 이격하여 나무줄기와 이파리로 엮어 만든 가벽이 그것이다. 콩고에서는 추엔게 농촌종합개발사업 건축 설계 및 감리, 그리고 킨사샤 국립박물관 사전조사를 지원했다.

서부 아프리카의 앙골라는 연안 대서양 쪽 연안어종이 씨가 마르면서 한국이 강점을 가진 내수면 어업 기술 이전을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앙골라 수산자원 조성 기술 역량 강화 사업 설계에 참여했다. 또한 북부아프리카 알제리 사하라 사막에도 그의 흔적이 새겨졌다. 2017년 10월 야외 양식장에서 갓 건져 올린 5t의 새우가 폴짝폴짝 뛰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알제리 사하라사막 새우 양식연구센터 건립 및 양식 기술 이전 사업 설계 및 감리를 담당했다. 참고만 하라고 설계해준 도면으로 알제리 측이 시공한 야외 양식장을 보고서 등골에서 식은땀이 났다고 한다. 지역 특성을 감안한 설계를 했다. 이슬람 국가인 알제리라는 지역특성을 감안하여 연구시설동에 남녀가 구분된 기도실을 설계에 반영했다.

 

건축가 이상행이 설계한 알제리 사막 새우 양식장

▲ 건축가 이상행이 설계한 알제리 사막 새우 양식장

민간 건축사사무소를 경영하는 이상행의 공공건축에 대한 철학은 명확하다. '재정을 압박하는 해외 유명 건축가의 강제적 참여 종용이나 건축사의 창작행위에 대한 불신 또는 지나친 간섭은 배제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발주처들은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건축가가 관여된 건축사사무소에 더 많은 점수와 신뢰를 준다. 선정이 되어도 디자인에 지나친 간섭을 한다. 세계적 흐름인 친환경 재료인 목재를 쓰고 싶어도 불연 재료만을 고집하는 엄격한 건축법의 적용을 받는다.

 

공공건축인 역사는 관계부처 간 협의가 늦어져 설계기간이 지나치게 늘어나 기회비용 증가로 실속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고속철도 역으로는 국내 최초로 지하에 건설된 동탄역사 등 여전히 철도건축을 주로 설계하는 그는 여전히 철도건축을 사랑하는 건축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