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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묵상

2016년 1월 19일 화요일[ 연중 제2주간 ]

by 추산봉 2016. 1. 27.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일주일의 개념이 한국에 들어온것은 19세기 말쯤 들어온것으로 보인다.

어쨋거나 며칠 일을 열심히 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심신의 건강으로 보아 바람직한 것이기는 하다.

특히 농경사회가 주를 이루는 시기를 지나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에 얽매어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7일을 주기로 하여 쉬는 날을 지정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직업에 따라서는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사람도 있고 3교대, 4교대 제도도 있다. 이 모든것이 다 잘살자고 하는 일이기는 한데...

주님의 천지창조설화에도 나오는 것을 보면 보편적이긴 하나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주일날은 봉사하느라 일하고 다른 날은 직장에 나가 일하는 사람도 있어 안식일의 개념이 지켜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봉사하는 것을 비난 해서야 되겠는가?


인터넷에서 일주일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그럴듯한 주장이 있어 참고로 수집해보았다. ^-^



일주일의유래
달력은 천문학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24시간, 즉 하루는 지구의 자전과 같고 우리의 1개월은 달의 공전과 똑같고 1년은 지구가 태양의 궤도를 공전하는 것과 똑같다.
여기에 덧붙여 약 4,000년 전 바빌로니아의 포로였던 유태인들이 7일 1주일제를 만들었다고 믿어지고 있다. 이런 달력은 씨를 뿌리고 거름을 하고 추수를 하는데는 유용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가장 큰 문제는 1태양년(지구의 1공전)과 태음년(12번 달이 만월이 되는 것) 사이에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태음년은 354일 8시간 48분이고 태양년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한 주일은 나라와 민족마다 달랐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과 그리스인은 한 달을 3줄로 나누어 1주가 10일 이었다. 동양에서도 초순, 중순, 하순으로 일주일의 개념이 열흘로 되어 있다. 또한 서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은 1주일이 4일이었다. 현재와 같은 7일 일주일제를 몇몇 나라가 바꾸어 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이지만 모두 습관의 힘에 눌려 성공하지 못했다. 1792년 프랑스에서는 자기들이 발명한 미터법에 맞추어 10진법의 1주 10일제를 써보려 했다가 나폴레옹이 이를 폐지했다. 1929년 소련은 1주 5일제를 1932년에는 1주 6일 제를 시도해 보았으나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실패했다. 달마다 일수가 다른 이유는 율리우스 시저 당시의 로마인들이 율리우스력을 고안했을 때 종교상으로 특히 중요한 달은 31일로 하고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달은 30일로 했기 때문이다. 시이저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는 8월에 자기이름을 붙이고 31일로 만들었다. 그러기 위해서 억지로 2월을 28일로 깎지 않을 수 없었다.■ 일주일이 7일인 이유..
. 아주 오래 전 원시적인 날짜 세기를 하던 사람들에겐 "주일" 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문명이 진보하면서, 사람들은 하루보다는 길고 한달보다는 짧은 기간 개념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계획을 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맺고 끊을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의 정의가 필요했겠죠? 처음의 '주일'은 장날의 간격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서아프리카 종족들은 4일, 고대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은 한 달을 3줄로 나누어 1주가 10일이었고, 로마인들은 9일마다 장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그 기간을 일주일 삼아 생활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다가 일주일이 7일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지금의 일주일은 그중하나가 아니라 몇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이루어진 결과일 거라는 이야기가 유력합니다. 그 몇 가지를 살펴보면
 ① 보름 상현 하현 그믐 등 달의 위상변화 간격이 대략 7일이라는 것②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7을 신성한 숫자로 생각했다는 것 ③ 오래전 인류가 하늘에 7개의 천체가 존재한다고 믿었다는 것④ 유태교의 안식일 의식에서 영향받았다는 것 등이 자주 인용되는 설입니다.
그 가운데 천체의 숫자와 관련이 있다는 설은 현재의 요일명이 실제 그 천체들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망원경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하늘에 별을 제외하고 7개의 천체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그 7개의 천체란 해,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입니다.영어로 된 요일명은 이 천체들, 또는 각 천체에 해당하는 신화 속 신의 이름에서 따온 것들입니다. 현재와 같은 7일 일주일제를 몇몇 나라가 바꾸어 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이지만 모두 습관의 힘에 눌려 성공하지 못했습니다.1792년 프랑스에서는 자기들이 발명한 미터법에 맞추어 10진법의 1주 10일제를 써보려 했다가 나폴레옹이 이를 폐지했으며, 1929년 소련은 1주 5일제를 1932년에는 1주 6일 제를 시도해 보았으나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실패했다고 합니다.1년은 지구가 태양둘레를 일주하는 시간으로 정한다그런데 주週는 임의로 만든 구분이다주가 구분되기 전에는 날짜구분이 월月뿐이었다장날이 생기면서 5,7,10일로 정하게 되었고 바빌로니아인들은 7일로 하였다유대인은 바빌로니아의 관습을 도입했지만 종교적 행사만 치뤘다주란 요컨대 장날과 장날 사이의 기간이다유대인은 요일마다 이름을 붙였는데 안식일(지금의 토요일)로부터 세어간 것이다예컨대 수요일은 넷쨋날(토요일부터 4일뒤)로 불리웠다.이집트인들이 7일 주를 도입했을때는 각 날을 태양과 달과 다섯 개의 항성(화성,수성,목성,금성,토성)이름으로 불렀다로마인들은 처음에는 8일의 주를 썼다가 A.D4세기에 이집트를 모방하여 7일 주를 사용했다현재의 요일명칭은 라틴어가 아니라 옛앵글로색슨어(7-11세기영어)에서 유래한다요일을자기네의 신들이름으로 불렀다일요일- 태양의 날 -Sunnandae ->Sunday월요일- 달의 날 - Monandae ->Monday화요일- 화성의 날- Tiw(앵글로색슨의 전쟁의 신)-Tiwesdae->Tuesday수요일- 수성의 날-Wonden->Wednesday ->오딘의 날 Odin's day의 남부이름 Woden목요일- 목성의 날 Thor(뇌신, 전쟁의 신 토르 혹은 티르Try)-> Thursday금요일- 금성의 날 Frigg(오딘의 아내 프리가 혹은프릭)->Friday토요일- 토성의 날(Satan 본래 천사였으나 신에 반항한죄로 쫓겨난 악마)Saeternsdae->Saturday일요일(Sunday)은 고대 영어의 'day of sun'에서 유래해 해(日)에게 바쳐진 날이라는 뜻이다.월요일(Monday)은 고대 영어의 'day of moon'에서 유래, 달(月)에게 바쳐진 날이다.화요일(Tuesday)은 북유럽 전설에서 전쟁의 신인 'Tyr'에서 유래했다. 고대 영어로는 'Tiw'로 표기한 것이 변한 것이다. 로마신화에서 전쟁의 신은 '마르스(Mars)'이고, 마르스는 '화성(火星)'을 뜻한다. 이런 까닭으로 火요일이 됐다고 한다.수요일(Wednesday)은 북유럽 전설에서 폭풍의 신인 'Wodin'에서 유래했다. 행성으로 수성(水星; Mercury)에 해당하고, 머큐리는 '수은'이라는 뜻도 있다.목요일(Thursday)은 북유럽 전설에서 벼락의 신인 'Thor'에서 유래했다. 로마신화에서 벼락을 갖는 신은 유피테르(Jupiterㆍ영어명은 쥬피터)이며, Jupiter는 목성이다. 이런 까닭으로 木요일이 됐다.금요일(Friday)은 북유럽 전설에서 사랑의 신 'Friya'에서 유래했다. 로마신화에서 사랑의 신은 '베누스'(Venusㆍ영어명은 비너스)이며, Venus는 금성이다. 이런 까닭으로 金요일이 됐다.토요일(Saturday)은 로마신화에서 농업의 신 '사투르누스'(Saturnusㆍ영어명은 새턴 Saturn)에서 유래했다. Saturn은 토성이며 이런 까닭으로 土요일이 됐다. 
주5일 근무제와 종교문화지형의 변화
1. 종교, 노동, 놀이종교가 노동을 끌어안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종교적인 인간’과 ‘노동하는 인간’이 겹쳐져 있던 시절이 있었다. 농경사회에서는 파종․재배․추수의 전과정이 자연의 품안에서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노동이 자연과 별개일 수 없었다. 결국 자연의 정상적인 운행이 종교나 의례와 무관할 수 없었기에, 노동은 항상 종교와 궤를 같이하는 그런 것이었다. 어찌 보면 그런 시절은 낟알 한 톨 안에서도 종교를 발견할 수 있었던 때였다. 이처럼 농경사회의 종교성은 노동․종교․자연이 공존하는 그런 것이었다. 농경의 역사 속에서 기능했던 종교는 ‘휴식의 종교’가 아니라 ‘노동의 종교’였을 것이다.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은 종교, 종교로부터 소외되지 않은 노동, 이 둘을 분리할 수 없었던 그런 시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현재 우리의 노동과 우리의 종교 사이에 개재한 거리감을 해소할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종교가 놀이이고 놀이가 종교이던 시절이 있었다. 놀이 속에 스며든 종교에 의해서 일상의 놀이조차도 종교적인 의례의 차원에 이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는 놀이를 통해 인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모든 놀이의 몸짓은 신을 만나기 위한 의례적인 몸짓이었고, 종교는 일상의 어느 곳에나 질펀하게 널려 있었다. 발걸음 하나조차도 종교였고, 식사를 하고 집을 고치는 행위에도 종교가 스며들어 있었다. 마을 어귀 벅수도 종교였고, 산기슭의 기암괴석도 종교였고, 집안 우물도 종교였고, 문지방조차 종교였다. 종교는 발길 곳곳에서 마주치는 일상이었다. 이런 세계 속에서 놀이는 항상 축제이거나 연회이거나 잔치였다. 엄숙주의와 형식주의에 물들지 않은 제사를 통해, 인간은 신과 조상을 놀이의 현장 안에 초청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놀이는 어떠한가? 우리의 놀이와 우리의 종교 사이에 개재한 거리감을 해소할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주5일 근무제와 관련한 아래의 짤막한 논의를 통해, 이 글은 종교․노동․놀이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에 언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현재 한국사회의 현안으로 대두하고 있는 주5일 근무제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보기로 하자.
2. 주5일 근무제와 노동의 문제
우리는 여전히 OECD 국가 가운데 최장시간의 노동시간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살고 있다. 이미 프랑스는 1936년에 미국은 1938년에 주당 40시간의 노동시간단축을 실현한 바 있다. 나아가 프랑스는 2000년부터 주당 35시간제가 실시되고 있다. 이제야 우리들이 핏대를 올리며 논의하는 사항이 이미 60여년 전에 시행되고 있었다니 다소 허탈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그 동안 노사정 위원회를 중심으로 하여 많은 논란을 야기했던 주5일 근무제가 입법화되지 못한 채 표류를 거듭해 왔다. 주5일 근무제라는 큰 틀에는 합의를 보고 있으나, 근로시간 관련 제도인 유급주휴, 월차휴가, 유급생리휴가, 임금화된 연월차 휴가 등이 문제가 되면서 노사정 위원회가 협상과 결렬을 반복했던 것이다. 2001년 12월 18일에 발표된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르면 공공부문, 금융 보험업, 1000명 이상 사업장은 2002년 7월 1일, 300명 이상 사업장은 2004년 7월1일, 10명~300명 미만 사업장은 2007년 1월1일, 10명 미만 사업장은 2010년 1월1일부터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당시에 공무원은 2002년 3월부터 월 1회 시범적으로 토요휴무제를 실시한 뒤 2002년 7월부터 주5일 근무를 하도록 정했다. 그러던 차에, 요사이 금융권에서 독자적으로 오는 2002년 7월 1일부터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하게 됨에 따라, 다시 주5일 근무제 추진이 탄력을 받고 있다. .주5일 근무제는 이미 1998년 2월 6일에 제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다루기 위한 근로시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문제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 5월 17일에 노사정위원회에서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2000년 10월 23일에 근로시간단축 관련 기본원칙이 합의되었다. 이 합의문에는 근로시간단축 및 임금, 휴일․휴가 제도 개선을 통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주5일 근무제를 정착시키고, 이와 보조를 맞춰서 주5일제 학교수업 및 여가시설의 확충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그러나 주5일 근무제의 논의와 도입의 속도에 비해, 주5일제에 대한 국민들의 체감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당장 주5일 근무제에 대한 그림이 안 그려지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지게 될까? 현재 많은 사람들은 그저 기대반 우려반으로 주5일제의 도입을 수동적으로 바라보고만 있는 실정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주5일 근무제가 단순히 노동시간단축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주5일 근무제는 노사정 위원회에서 논의되는 것처럼 단지 현행 근로기준법 제49조(근로시간)을 개정하는 문제의 차원에 놓여 있지 않다. 주5일 근무제 실시의 영향력은 실로 전방위적인 것 같다.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될 경우, 이것은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종교, 교육 등의 전영역에 만만찮은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다.1970년 11월 13일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했던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의 외침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주5일 근무제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일 것이다. 전태일은 1953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의 주당 48시간 근로시간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당시의 외침은 근로기준법의 ‘개정’의 차원이 아니라 ‘준수’의 차원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전태일이 ‘준수’를 외쳤던 그 근로기준법이 1989년에 주당 44시간의 근로시간으로 개정되었고, 이제 다시 주당 근로시간 40시간을 의미하는 주5일 근무제가 도입의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주시해야 할 중요한 점이 있다. 그것은 노동시간 단축의 과정이 단지 노동환경의 변화만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상대적으로 자유시간의 점진적인 증대를 가져왔고, 시간의 자유는 자연스레 문화의 영역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의 변화가 그러했다. 현재 우리는 근로기준법의 점진적인 준수와 주당 48시간이 44시간으로 바뀌면서 일어난 변화의 한가운데서 살고 있다. 그러나 주5일 근무제의 효과는 이 정도의 소극적인 변화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5일을 일하고 2일을 쉰다는 시간틀이 몰고올 변화는 지금까지의 소소한 변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시간 개혁’과 ‘문화 개혁’을 초래할는지도 모른다. 시대가 변했고 여건이 달라진 것이다. 근로기준법의 개정은 이제 더 이상 노동운동의 차원에서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3. 토요 반휴와 시간 전쟁
일주일의 역사에는 많은 숨은 역사가 가로놓여 있다. 한국에서는 1895년 음력 4월 초1일 관보에 처음으로 요일을 기입하였고, 같은 해 음력 윤5월 10일에 각 관청 집무시간을 정하면서 일주일 관념이 공식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때 정해진 집무시간에는 “일요일은 전일 휴가로 작(作)하고 토요일은 정오 12시부터 휴가를 작함”이라는 조항이 있었다. 한국의 일요일 전휴와 토요일 반휴의 역사는 이때 처음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일주일 7일의 관념과 일요일 전휴와 토요일 반휴라는 관념이 지금까지 백여 년간 서서히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그 사이에 우리의 삶은 점차 철저하게 7요일․일요 전휴․토요 반휴의 시간구조 속에 용해되었으며, 한 달이나 일 년보다도 요일에 의해 시간의 흐름을 계산하는 데 익숙해졌다.사정이 이렇다면 현재 주5일 근무제의 완전한 정착은 일시에 이뤄지기 힘들 것 같다. 우리의 몸과 정신뿐만 아니라 문화와 사회의 온갖 지층은 일요 전휴․토요 반휴의 시간틀에 의해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다. 그러므로 주5일 근무제라는 새로운 시간틀은 우리에게 너무나 낯선 것이다. 물론 1895년 음력 윤5월 10일의 관청집무시간표는 지금의 집무시간과는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곡우로부터 소서 전일까지는 오전 9시부터부터 오후 3시까지, 소서로부터 백로 전일까지는 오전 8시부터 정오 12시까지, 백로로부터 곡우 전일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근무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므로 이때의 일주일은 아직 음력과 24절기에 기반한 시간틀에 7요일 주기를 끼워넣은 형태에 불과한 것이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바처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8시간씩 일하고 토요일은 4시간을 일한다는 관념은 아직 찾아볼 수 없었다. 7요일 주기는 1896년에 태양력이 도입되면서 처음으로 달력에 기입되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대중의 일상시간 속에 침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도시화, 산업화, 상업화, 국제교역, 학교교육, 관청집무시간 등이 점차 7요일 주기의 정착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을 것이다.여하튼 현재 주5일 근무제의 도입과 함께 한국의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토요일을 전휴로 한다는 관념이 등장하게 된 것이 요즈음 저간의 사정이다. 따라서 주5일제는 기존에 백여 년간 유지되던 7요일의 시간틀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일 수밖에 없다. 기존의 7요일 관념은 일요 전휴․토요 반휴의 관념과 동의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토요 전휴의 관념은 그것만으로도 기존의 일주일 관념을 전복하는 그런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 문화, 종교, 경제, 교육 등 모든 영역은 일요 전휴․토요 반휴의 관념을 중심으로 하여 편제되어 있다. 그러므로 토요 전휴라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위의 모든 영역이 더불어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주변환경이 얼마나 철저하게 시간적으로 편제되어 있는가를 증언하는 것이기도 하다.따라서 주5일 근무제는 일종의 ‘시간의 실험’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리의 요일 감각은 일요일 중심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휴일 중심적인 시간 감각은 많은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노동을 제외한 각종 행사들이 일요일에 집중됨으로써, 일요일은 휴일이라기보다는 평일에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날이 되어 버렸다. 종교 또한 예외는 아니다. 현대사회와 같은 다종교 상황에서 각 종교는 서로 일요일을 쟁탈하기 위해 ‘시간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중의 거의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이 선교와 포교의 공략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쩌면 주5일제는 지나치게 휴일 중심적인 우리의 시간 감각을 치유해줄 수 있는 대안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휴일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시간은 휴일 중심적으로 편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휴일이 많아질수록 휴일 중심적인 시간은 해체된다. 그렇다면 종교 또한 이에 발맞추어 휴일 중심적인 시간의 구도로부터 탈피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전휴가 되면, 휴일이 소화할 수 있는 일들이 양이 증가한다. 그만큼 휴일의 희소가치가 적어지게 되는 것이다. 기존에 휴일은 한 가지 일만을 할 수 있는 날이거나, 단시간에 최대한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그런 날이었다. 그러나 주5일제는 우리의 휴일 관념 자체를 전환시켜 줄 수 있을 것이며, 종교 또한 변화된 휴일 관념을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휴일 중심적인 시간은 노동의 일상적인 시간을 문화의 영역으로부터 소외시켜 왔다. 종교 또한 휴일의 시간만을 선교와 포교의 대상으로 삼아 편애함으로써, 일상의 시간과 평일의 시간을 종교의 영역으로부터 소외시켜 왔다. 그러나 주5일제의 실시로 휴일 중심적 시간이 해체 될 경우, 종교 또한 일상의 시간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5일 근무제가 종교와 일상을 조우하게 해줄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고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4.  일주일의 폐지
예로부터 종교와 시간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가령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일주일의 시간리듬을 종교생활의 기본 형식으로 삼고 있다. 유대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삼았고, 기독교는 유대교와의 차별성을 꾀하면서 일요일을 ‘주의 날’로 선포했으며, 이슬람교는 앞의 두 종교와의 차별성을 위해 금요일을 예배일로 삼았다. 여기에는 묘한 시간의 정치학이 내재해 있다. 7일 중에 특정한 요일을 차지하여 자기 종교의 날로 삼는 것은, 타종교와 거리를 두기 위한 시간 전략이었다. 같은 요일에 같은 장소에 모인다는 것은 종교적인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시간적인 방편이었다. 이런 점에서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한 종교는 대개 ‘시간의 정치학’을 가장 잘 구사하는 종교였다.그러므로 종교를 억압하는 정책은 해당 종교의 ‘시간 주기’를 일차적인 해체 대상으로 삼았다. 종교는 시간을 주기로 하여 의례일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결속력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해당 종교의 독특한 시간 주기를 해체한다는 것은 종교를 와해시킨다는 뜻했다. 그리하여 종교적인 시간 주기를 해체하려는 두 차례의 역사상의 시도가 있었다. 첫 번째로, 프랑스대혁명 이후인 1793년에 프랑스에서는 7요일을 폐지하고 데카드(Décade)라고 명명된 10일 주기의 요일제를 도입했으며, 각 요일의 명칭도 새롭게 제정했다. 그리고 10일 주기의 마지막 날을 데카디(Décadi)라고 하여 공식 휴일로 삼았다. 프랑스의 이러한 10요일제의 시행은 다분히 “일요일을 폐지하는 것”, 즉 프랑스를 탈-기독교화시키려는 전략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1799년 11월 9일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의해 좌절되었다.그리고 두 번째는 1929년에 구소련에서 시행된 네프레리프카(Nepreryvka)라고 하는 5요일제였다. 5요일제는 한 달을 30일 6주로 하며 매달 1일과 월요일을 같게 하는 체제였다. 이 제도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동자를 5개 그룹으로 분할하여 5일마다 한번씩 휴무를 주는 제도였다. 이것은 프랑스의 개혁보다 훨씬 급진적인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요일에서 일요일과 토요일을 아예 제거해 버렸을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동시에 휴무하는 날을 없앰으로써 안식일과 일요일의 관념을 형해화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네프레리프카는 1931년에 중단되지만, 구소련은 다시 체스티드네프키(chestidnevki)라는 6요일제를 도입한다. 그리고 이 6요일제는 1940년 6월 26일까지 시행되었다.이러한 역사적인 사례는 현재 한국에서 주5일 근무제와 관련하여 일고 있는 종교계의 고민을 어느 정도 대변해 주고 있다. 한국의 종교계는 대부분 주5일 근무제를 종교의 위기 상황으로 파악하고 있다. 애초에 주5일 근무제 시행이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맥락에서 결정된 문제이고, 종교계는 이에 수동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7요일과 일요일을 없애려는 프랑스와 구소련의 개혁이 좌절되었듯이, 종교적인 시간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영향력이 있던 종교들은 기존의 시간 리듬에 단순히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종교의 새로운  시간 리듬을 창조하며 발전해 왔다. 그렇다면 주5일제를 통해 종교계가 해결할 문제는 오히려 새로운 시간 리듬의 창조가 아닐까?   
5. 새로운 종교문화의 창조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스파르타(Sparta)의 예를 들면서 평화(peace)와 여가(leisure)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스파르타인은 전쟁을 하는 동안에는 안전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제국을 얻자마자 몰락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스파르타인은 평화가 가져다준 여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평화와 여가를 얻기 위해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준비하는 데 평화와 여가를 사용했다. 따라서 스파르타인은 막상 제국의 이룩하자마자 여가를 풍성하게 할 문화적인 장치의 부재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여가문화의 빈곤과 부재가 스파르타의 몰락을 재촉했다는 이야기다.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주5일제가 실시되고 토요와 일요의 전휴가 주어질 때, 우리의 여가문화가 스파르타식의 빈곤을 경험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스파르타 이상의 문화 빈곤을 경험하게 될는지도 모르고, 이것이 새로운 문화창출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종교문화 또한 대중의 휴일 여가를 다른 평일의 시간으로부터 나포하고 채취하는 문화였다. 종교계 일반에서 진행되는 현재의 논의 또한 그러한 강박증의 일단을 보여준다. 기독교계 일각에서는 신도수의 감소를 우려해 주5일 근무제를 비성경적․반성경적인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고, 일부에서는 전원교회라는 모델을 통해 대중의 휴일을 흡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불교계 또한 묵언, 숲길 산책, 스님과의 대화, 다도, 좌선, 독송, 진리의 말씀, 수행일기 작성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산사로 신도를 끌어들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다른 종교들 또한 주5일 근무제가 자기 종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절치부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주5일제를 계기로 종교문화의 틀 또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선교를 통해 대중의 여가를 나포하는 종교문화가 아니라, 대중에게 여가를 돌려주는 종교문화로 전환되어야 하지 않을까? 주5일제는 종교계에 닥친 위기도 아니고 악재도 아니다. 오히려 주5일제는 역사 속에서 등장한 하나의 시간 개혁이다. 그렇다면 종교 또한 역사적인 적응과 변모를 통해 새로운 종교문화를 창조할 수 발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주5일제는 새로운 종교성과 새로운 종교문화의 출현과 등장을 예고하는 신호탄일 수도 있다. 어쩌면 주5일제는 ‘휴일의 종교’가 아니라 ‘평일의 종교’를 요청하고, ‘비일상의 종교’가 아니라 ‘일상의 종교’를 요청하는지도 모른다. 주5일 근무제가 일요일에 갇힌 기존의 종교를 다른 요일들로 해방시켜 줄 뿐만 아니라, 사원과 성소에 갇힌 종교를 일상의 공간으로 해방시켜 줄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