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건축

48세의 칠레 건축가, 프리츠커상을 거머쥐다

by 추산봉 2016. 9. 2.

http://m.blog.naver.com/st_jane/220611831040


48세의 칠레 건축가, 프리츠커상을 거머쥐다

알레한드로 아라베나. (Alejandro Aravena)

Photo by Cristobal Palma.

이제 48살인 그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의 2016년 수상자로 발표되었을 때, 솔직히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건축가였던 데다가, 그가 한 작품의 대다수가 미국과 유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향이자 주 무대인 ‘칠레(Chile)’에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의 작품 수 대다수는 오늘날 건축 시장을 주름잡는 ‘스타키텍트(스타 건축가; Starchitect)’의 포트폴리오를 점령하다시피 한 아트 갤러리나 박물관도 아니다. 이른바 ‘사회 참여 디자인(Participatory Design)’이라는 다소 생소한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공동 주택’이 그의 건축 세계를 읽을 수 있는 건축물이다.
공동 주택이라니. 사회 혁신상이나 평화상이면 모를까, 미학과 공학의 접점에 있는 ‘프리츠커상’을 공동 주택 건축가가 받을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그만의 ‘스타일’을 찾기가 힘들다

아라베나가 독특한 이유는 그가 지은 건축의 모티브가 쉽사리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작년에 프리츠커상을 받았던 프라이 오토(Frei Otto)나 그 전년도에 수상했던 시게루 반(Shigeru Ban) 그리고 그전의 수상자들의 경우, 조형적으로 읽히는 건축가의 ‘미학’이 있다.
쉽게 말해서 자동차를 볼 때, 그릴만 봐도 이 차가 Audi 인지 아니면 BMW 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디자인적인 요소가 반복적으로 사용될 때, 이는 고유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형성하게 된다. 건축도 마찬가지인데,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보고, ‘누가 만들었을까?’라고 물어본다면, 건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 특유의 형태를 통해서 열에 아홉 자하 하디드를 손꼽을 것이다.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 www.arcspace.com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라베나의 포트폴리오는 조형을 찾기 힘든 건물들이 대다수다. 특히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공동 주택을 살펴본다면 그 어떤 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에 앞서, 제약 조건을 풀어내고자 하는 아라베나의 ‘문제 해결 능력’이 더 돋보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왜 공동 주택일까?

아라베나가 왜 그토록 공동 주택을 디자인하고, 또 이에 대해서 프리츠커상 심사단이 왜 그를 2016년의 수상자로 지목할 만큼 높게 평가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칠레를 둘러싼 현실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범 지구적으로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도시화(Urbanization)가 진행되면서,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도시에 사는 인구’가 ‘농촌에 사는 인구’를 추월했다. , 이제 지구 위에 인구 중 반이 넘는 인구가 도시에 사는 셈이다.

도시 인구는 이미 농촌 인구를 추월했다 – United Nations, Department of Economic and Social Affairs, Population Division (2006)

이는 분명 ‘좋은 점’과 동시에 ‘나쁜 점’을 지니고 있다. 도시화의 이점으로는 더 많은 일자리 등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회’가 농촌과 비교했을 때 더 많아진다는 점이 있다.
하지만 바로 이 기회가 균등하게 돌아가지 못할 때 도시화는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문제가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멕시코시티의 ‘슬럼(Slum)’이다.

멕시코시티의 슬럼. Photo by Pablo Lopez Luz.
2030년을 기준으로 약 50억 명의 인구가 도시에 살게 될 것이지만, 그중 60%가 넘는 약 30억 명의 인구가 빈곤에 처할 것이다.
–아라베나, TED Talks at Rio de Janeiro

30억 명의 인구가 슬럼에 살게 될 때의 문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크게 앓고 있는 남미 국가 중 아라베나가 자라고 또 주 무대로 삼고 있는 칠레도 예외가 아니.
슬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칠레 정부의 노력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는 정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이 문제를 풀 수 없음을 알고 민간 합작으로 공동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정부의 보조금을 갖고, 건축가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디자인으로 ‘가난’이라는 문제를 풀다.

그리고 바로 10여년 전인 2004. 칠레의 이키케(Iquique) 지역도 그러한 슬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 주택의 ‘부지’로 거론되던 곳 중 하나였다. 칠레 정부는 각 주택당 $ 7,500 (한화 약 900만 원)를 국가 보조금으로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건축 설계안을 민간에게 맡겼다. 이 금액은 사실 집을 한 채 짓기도 부족한 금액이었는데, 보통 건축가들은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곤 했다:

1) 가격이 싼 부지에 80의 집을 짓는 것
2) 가격이 비싼 부지에 40의 집을 짓는 것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 값이 싼 부지에서는 약 80㎡의 집을 지을 수 있지만, 값이 비싼 부지의 경우 40㎡의 집 지을 수 있다. 보통 이럴 경우에 건축가들은 1번 안을 선택하곤 했다. 80㎡의 집을 짓는 것이 입주자들에게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아라베나는 문제를 새롭게 조망하기 시작했다.

40㎡를 ‘작은 집’이라고 규정짓기보다는, 좋은 집의 ‘반쪽’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아라베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공동 주택에 들어오는 가정이 만성적인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소득상승의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소득 상승의 기회는 집의 크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집이 위치하고 있는 ‘부지’에 달려있다.

다른 건축가들과는 달리, 그에게 최우선 순위는 집의 크기가 아니라 위치였던 것이다.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디자인

사실 값이 싼 부지는 주로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곳’ 즉, 도심의 외곽에 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크기의 집을 얻는다 하더라도, 결국 건물 입주자들은 빈곤층에서 벗어날 기회를 만나기가 어렵다. 반면에 값이 비싼 부지는 그만큼 일자리를 얻기가 더 쉽고, 경제적 활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
, 아라베나는 지금 당장 값이 싼 부지에 80㎡의 집을 지어주는 것보다, 값이 비싼 부지에 40㎡의 ‘반쪽 집’을 지어주되, 나머지 반은 가족으로 하여금 만들어나갈 수 있는 틀을 선사해준 것이다. 이렇듯 집의 반쪽이 비어있는 모습은 가시적인 목표를 설정해 주었고, 이를 채우기 위해서 각 가정은 더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100여 가정은 반쪽자리 주택을 얻은 지 채 몇 주 지나지 않아서 주택의 나머지 반쪽을 채워나갔다. 그들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날 힘을 얻은 셈이다.

2004년 이키케(Iquique) 지역에 ‘반쪽 주택’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반쪽 주택이 확장된 모습. 이미 만들어진 구조에 각 가정마다 개성을 입힌 나머지 반쪽이 눈에 띈다.
놀랍도록 변한 집안 내부. 몇 년 후 이 부지의 부동산 가치는 약 3배 넘게 올랐지만, 거주민들은 살던 집에 그대로 머물 수 있었다.
반쪽 주택의 또 다른 사례.
반쪽 주택이 확장되고 있는 모습.

그리고 아라베나는 반쪽 주택을 만들 때,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디자인에 반영했다.

우리는 가족들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물었다: 온수기인가? 아니면 목욕통인가? 이 둘을 모두 살 예산은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의사 결정자들 내지 정치가들이나 전문가들은 온수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가족들은 100% 모두 온수기보다 목욕통을 선호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이 물이 안 나오던 환경에서 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중략] 우리는 그들의 우선순위 중 온수기보다 목욕통이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고, 온수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들 스스로 장만하게 했다.
- 아라베나, 다큐멘터리 'Urbanized' 중에서

물론, 아라베나는 ‘공동 주택’만 만들지 않았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아라베나는 단지 사회 참여적 디자인만 하는 사회적 기업가로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라베나는 21세기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해결하기 위해, 건축의 구조와 설계 그리고 재질을 완벽하게 사용할 줄 아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일례로 칠레의 산티아고(Santiago)에 위치한, 2014년에 완공된 칠레 가톨릭 대학(Universidad Catolica de Chile)의 ‘가톨릭 대학 혁신 센터(UC Innovation Center)’의 경우, 아라베나는 루이스 칸(Louis Khan)의 건축처럼 매우 단순하면서도 무거운 매스를 지닌 건물을 지었다. 이 건축에서는 그의 미학적 기준이 아낌없이 드러난다.

2014 칠레 산티아고. 가톨릭 대학 혁신 센터. Photo by Nina Vidic.

이러한 독특한 외관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유리 건물’과는 큰 차이가 있다. 건축 외관에 창문이란 볼 수가 없고 콘크리트 덩어리만 보이기 때문이다.
건축 외관에 콘크리트를 사용했기에 얼핏 보면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건축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안도 다다오의 경우 주로 소규모 건축에다가 콘크리트를 사용했음을 볼 때 이 건축은 확실히 독특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왜 그는 이런 형태의 건축을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한다.

위 그림에서 가운데 ‘회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주로 엘리베이터, 계단 등 건물의 중심부 역할을 한다. 이 중심부를 감싸고 있는 건축의 외벽으로 통상 유리가 쓰이는데, 연중 평균 온도가 21도를 웃도는 산티아고와 같은 기후에서는 이러한 공법이 온실 효과(Greenhouse Effect)를 극대화 시킨다.
덧붙여 이러한 구조는 각층의 의사소통도 차단하는데, 같은 층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층에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라베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심부와 외벽을 뒤바꾸는 디자인을 한다.

뜨거운 햇볕을 막기 위해서 외벽에 유리 대신에 두꺼운 콘크리트를 설치하고, 건축의 중심부는 콘크리트 대신에 유리를 설치하고, 아예 ‘비워놓은’ 공간으로 남겨두었다. 이러한 ‘뒤바뀐 구조’를 통해서 아라베나는 디자인과 지속 가능성을 모두 자기 나름대로 풀어내는데, 실제 건축을 보면 그의 접근 방식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강력한지 느낄 수 있다.

햇빛을 차단하는 역할과 동시에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외벽. Photo by Felipe Diaz.
중심부에 있는 아트리움. Photo by James Florio.

이렇듯 두꺼운 외벽과는 달리 건축 중심부에는 비어있는 공간, 즉 아트리움(Atrium)을 배치했다. ‘열린 공간(Open air space)’을 통해 외부의 무거움을 내부의 가벼움으로 상쇄시키기도 하고 부족할 수도 있는 일조량에 대한 문제도 해결하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이 열린 공간을 사이에 두고 유리를 통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각층의 사람들을 바라보게 됨으로써, 더 활발한 교류(Interaction)도 일어나게 되었다.
아라베나는 이렇듯 내부와 외부를 바꾸는 역발상을 통해서 연간 ㎡당 에너지 소비량을 120kW(킬로와트)에서 40kW로 대폭 축소했다. 평소 에너지의 2/3를 절감한 것이다. 그는 이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상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평한다.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 어떤 대단한 기술적 혁신이나 공학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을 제대로 활용하기만 해도 이에 맞는 디자인이 나온다.
- 아라베나, TED Talks at Rio de Janeiro
그의 생각과 계산이 들어가 있는 가톨릭 대학 혁신 센터의 스케치. Sketch by ELEMENTAL. (Alejandro Aravena)

아라베나의 수상으로 인해 프리츠커상에도 변화가 생긴 걸까?

아라베나의 수상 소식을 통해서 프리츠커상에 대한 많은 말이 오간다. 프리츠커상이 지금까지 너무 ‘전통적인 이미지’에 갇혀 있다가 이제야 변화를 맞이했다는 기쁨의 목소리가 있지만, 다른 건축상들과 차별점을 두지 못한 체 ‘인도주의적인(Humanitarian)’ 프로젝트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는 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아라베나의 수상 소식은 긍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건축계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가난(Poverty)에 대한 논의가, 이제는 주류 건축계를 넘어서 나처럼 건축에 관심이 있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전달되기 때문이다.
덧붙여 아라베나의 건축은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기도 한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의 그라민 은행(Grameen Bank)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라민 은행에 대한 항목은 다음 나무 위키 기사를 참조 - 클릭)
이 둘의 공통점은 가난의 문제를 일차원적인 ‘재정 공급’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라베나의 경우, 자급자족하기 위해서 도심지에 생활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목표였고, 유누스의 경우, 소규모 창업을 위한 종잣돈을 무이자 무담보로 대출해 주는 것이 목표였다. 이 둘은 빈곤층에 속한 이들이 스스로 힘으로 가난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Empower) 역할을 함으로써, 당사자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게끔 해 주었다.
특히 이번 아라베나의 수상 소식이 반가운 이유는,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큰 문제들도 디자인의 힘으로 하나둘 풀어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2014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시게루 반이 재해 난민들을 위한 카드 보드지로 임시적인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면, 2016년 수상자인 아라베나는 빈곤 가정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집을 마련해 준 셈이다.

아라베나의 스케치. From TED Talks at Rio de Janeiro.

너무나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하나의 형태’로 변환(Translate) 시키는 힘. 아라베나는 이 힘을 디자인의 가장 강력한 힘인 ‘통합의 힘(Synthesis)’이라고 표현한다.
질문에 올바른 답을 찾는 것에 앞서, ‘올바른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축가. 형태는 꼭 콘크리트, 유리, 나무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에 ‘삶(Life)’이 있다고 말하는 건축가. 아라베나의 건축들이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의 행보가 영감이 되는 이유는 그의 철학이 건축은 물론 디자인에 대이해의 폭을 매우 깊고 넓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