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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방직주식회사는 仁村 金性洙(1891~1955)가 1919년 10월 민족의 산업을 일으키고자 세웠다. 일제시대에 직물류의 자급자족을 위한 민족기업으로 전국에 걸쳐 1인 1주 운동을 벌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주식회사제를 도입하였고, 1923년 3월에 우리나라 최초로 대량생산된 광목을 출하하였다. 경성방직 공장은 조적조의 공장사무동, 조적조 공장동, 철근콘크리트조의 기계실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공장건물은 한국전쟁 직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공장의 일부는 철거되어 경방필 백화점이 들어서 있다. 공장사무동은 붉은 벽돌에 의한 영식쌓기로 건축된 조적조 건물이다. 건물 중앙에 1978년 10월 5일 창립기념일에 세워진 김성수 동상이 있고 좌우에 사무동 출입구가 있다. 사무동 출입구의 개구부는 석재로 시공하였다. 경성방직 공장사무동 1936년 건립이래 건물 원형을 대부분 간직하고 있는 점에서 역사적·건축사적 중요성이 있다. 사무동 1동 건축면적 371.77㎡에 대해 2004년 12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공장동은 붉은 벽돌에 의한 조적조 건축으로 전체가 하나의 공장동으로 건축되었다. 거대한 단일 매스가 갖는 채광과 통풍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톱날형 지붕을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공장건축물이다. 기계실은 공장동을 위한 것으로 1960년대에 건축된 것으로 판단된다. 경성방직 공장동 중 유일한 철근콘크리트 구조이며, 파도형상의 지붕처리는 1960년대 유행하던 콘크리트의 조형성을 살린 콘크리트미학이 잘 반영된 수작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본 건축물은 비록 해방 후에 건축되었지만 경제개발기 섬유산업을 선도했던 경성방직의 주력공장이었다는 점에서 경제사적·사회사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다. 특히, 오래전에 공장의 가동을 멈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장 전체가 온전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 경성방직 건축물은 보존상태도 우수하고 1960년대 한국의 경제를 이끌었던 섬유산업의 본산이라는 사실과 공장건축의 전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매우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일제시대 이후 공장지대로 개발된 서울 최초의 강남지대인 영등포 일대가 공장의 이전에 따라 빠른 속도로 아파트단지화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시설 등은 박약한 상황이므로 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면 경성방직 건물의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경제개발의 주역이었던 산업공간이 지역사회의 문화공간으로 활용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