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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들의 거대한 정원, 라오스 루앙프라방

by 추산봉 2012. 11. 30.

제목 사원들의 거대한 정원, 라오스 루앙프라방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2-11-14 조회수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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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제1의 도시 루앙프라방의 보물

루앙프라방은 국가행정 전반을 현 라오스의 수도이자 숙명의 라이벌 도시인 비엔티엔(Vientiane)에 일임한 가운데 사실상 종교적, 문화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라오스 제1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곳을 위에 언급한 도시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 찬란하고 고즈넉한 루앙프라방에 대한 잘못된 접근이며 성급한 실례이다. 루앙프라방은 대도시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거대한 욕망과 얽혀진 조밀한 관계들의 밀도를 바닥까지 낮춰 이곳을 거대하고 아름다운 사원의 정원으로 만들어 놓았고, 1995년 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루앙프라방을 만나는 것. 그것은 유적과 아름다운 불교사원들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루앙프라방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적당해진 오후의 햇빛이 쏟아지는 강변의 길을 걷고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눌 것. 어스름한 새벽에 장엄하고 숭고한 탁밧 행렬을 바라보며 그저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것. 그리고 이 루앙프라방의 사원에서 잠시나마 함께 숨을 쉬고 이 고도의 정취를 느껴볼 것. 루앙프라방을 가지 않는다면, 라오스는 잊는 것이 좋다.  

루앙프라방의 건국과 불교의 흐름

란상 왕국의 건국은 당시 이 지역 소국출신의 한 왕자가 크메르(현 캄보디아)로 건너갔던 것에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의 혼란했던 정쟁을 피해 크메르로 건너간 왕자는 그곳에서 공주와 결혼을 했고 그 아들인 파 응움(Fa Ngum)이 다시 이 루앙프라방으로 돌아와 란상 왕국 건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소승 불교국인 크메르(khmer)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식된 불교는 란 상 왕국의 정신적인 구심점을 이루었고, 전 국가적인 종교로 확산되었다. 1356년 장인인 캄보디아 왕으로부터 선물 받은 프라 방은 스리랑카로부터 온 존귀한 보물이었고 이때부터 이 기품 있는 이름인 루앙프라방(루앙-큰, 프라 방-황금 불상)이라는 도시명이 생겨났다. 사실 건국이전 라오스 국토의 많은 부분에서는 정령신앙과 토속신앙이 혼재된 형태로 발전해왔던 것이 지배적이었고, 불교가 전국가적인 종교로 자리하기까지 정령신과 토속신은 라오스인들에게 깊은 신앙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현재 라오스나 미얀마 등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현실의 곤궁함은 토착신앙에 기대고 내세에서는 불교를 믿는 이원적인 신앙형태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한편 황금불상은 당시에는 루앙프라방까지 오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남쪽에서부터 올라오던 불상이 비엔티엔에 도착하자마자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비엔티엔에 머물던 이 프라 방은 이후 비엔티엔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태국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다시 태국에 빼앗기게 되고 이후 태국의 속국으로 전락한 라오스는 오랜 기간 동안 절치부심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계속되는 태국과의 긴장과 베트남의 영토 확장정세 속에 조공국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했던 라오스는 결국 태국의 섭정을 느슨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갔고 이후 양국은 점차적으로 보다 건설적인 우호관계로 발전했다. 

이 시기에 라오인들의 정신적인 신앙물인 프라 방이 다시 라오스로 돌아오는 획기적인 복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 열강들이 노골적인 식민지국을 건설하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던 이 지역은 때마침 중국의 남부지역에서 창궐한 이슬람세력들까지 득세하는 상황으로 치달아 라오스 전체가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역시 주변국들과 유럽국가의 거센 압박에 직면하던 인도차이나 지역의 맹주 태국은 라오스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고난의 시절을 보냈던 라오스는 자진해서 프랑스의 점령 하에 들어가게 되어 현재까지 정체성의 기반을 상실한 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왕궁’에서 ‘박물관’이 된 왕궁 박물관 

푸씨산 바로 앞 메콩강가에 위치한 왕궁 박물관은 과거에는 왕궁이었다가 현재는 국립박물관으로 그 쓰임새가 바뀌었다. 프랑스의 지배시기인 씨싸왕웡(Sisavangvong)왕이 재위하던 1904년에 짓기 시작해 완성되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린 이곳은 1975년 라오스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해 왕정이 폐지되기 전까지 라오스의 국왕들이 머물렀으며 라오스의 전통양식과 프랑스의 보 자르(Beaux-Arts)예술 그리고 크메르의 구조까지 혼합된 동서양의 자연스러운 건축기술이 녹아있는 곳이다.

루앙프라방의 또 다른 가치는 유럽의 문화와 라오스의 문화가 서로 공존하며 상생해 왔다는데 있다. 물론 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왕실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궁이었기에 아직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오고 있다는 설도 설득력이 있다. 내부에는 각 분야에 걸쳐 란상 왕조의 수많은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으며 박물관 한 켠에 있는 금각불사인 호 파방(Ho Pabang)에 황금 불상인 프라 방이 따로 보관되어 있다.

프라 방은 90%의 순금으로 만들어진 높이 83m 무게 50kg의 불상으로 위에 언급한대로 크메르의 왕이 란 상 왕국의 건국을 기념하기 위해서 선물한 것이다. 왕궁 박물관의 옆에 위치한 왓 마이(Wat Mai) 사원은 예전에는 이 성스러운 프라 방을 모셨던 사원으로 지금도 매년 새해행사인 삐 마이 라오(Pi Mai Lao(삐=year, 마이=new, 4월 중순경에 있는 라오스의 음력설)) 기간이 되면 프라 방을 다시 이곳으로 모셔와 물로 정성스럽게 씻으며 소원을 빈다고 한다.



루앙프라방을 대표하는 사원, 왓 씨엥통

루앙프라방에는 무려 300개가 넘는 불교사원들이 있다. 우선 라오스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알려진 왓 위쑨나랏(Wat Wisunnarat)이 있으며 왓 아함(Wat Aham), 왓 마이 수반나푸마함(Wat Mai Suwannaphumaham), 왓 파 빠이(Wat Pa Phai), 왓 탓 루앙(Wat That Luan), 왓 씨엥 무안(Wat Xieng Muan) 등도 이 루앙프라방을 아름다운 거대한 사원의 정원으로 가꾸어 놓는데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루앙프라방을 대표하는 사원은 메콩강과 칸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왓 씨엥통(Wat Xiengtong)이다. 1560년에 역시 라오스를 대표하는 비엔티엔의 탓 루앙(That Luang)을 만든 셋타티랏(Setthathirath) 왕에 의해서 세워진 왓 씨엥통은 앙코르 와트의 기적 같은 거대함과 미얀마 쉐다공의 마법 같은 웅장함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사원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목재를 사용하여 모든 허례와 기교를 축소시켰고, 소박하지만 신실한 불심으로 이 아름다운 사원의 정원에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세 겹으로 기울여져 쌓은 지붕은 그 흐름이 유려하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축기법으로 라오스 전통양식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이는 태국이나 캄보디아 등 주변국들의 사원과 확연하게 다른 모양새를 지녔다. 정면에서 사원의 지붕을 바라보자면, 내리던 비가 잠시 흩날리는 모습과 같으며 기품 있는 긴 칼자락이 허공을 가르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다. 왓 씨엥통의 이 절묘한 건축미는 라오스의 다른 사원들과도 확실히 격을 달리한다. 

1560년 지어진 왓 씨엥통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불국이다. 본당을 위시해 크고 작은 불당들과 황금색을 비롯한 화려한 색감들의 벽화, 500여 장이 넘는 대장경판고, 불탑 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본당 바깥벽에 있는 ‘생명의 나무’벽화는 은은하면서도 화려하고 절제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과감하며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왓 씨엥통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 켠에 마련되어 있는 홍 켑 미엔(Hong kep mien)이라는 당사이다. 씨싸왕웡왕의 사후 운구용 마차를 보관하기 위해 특별히 세운 건물로 현재에도 당시 왕의 시신을 옮겼을 때의 마차가 보관되어 있다. 배의 형태를 띠고 있는 목재재질의 이 운구용 마차는 높이가 12m나 되며 일곱 개의 나가Naga(힌두교의 신들 중 하나로 뱀, 특히 코브라를 나타냄.)는 전면에서 아직까지도 당시의 위용을 보여주듯 사실감 있게 자리하고 있다.

한편 건물 입구의 외벽은 인도의 고대 대서사시인 ‘라마야나’를 라오스식으로 각색한 황금빛의 부조로 뒤덮여 있는데 이들은 모두 왓 씨엥통이 어째서 루앙프라방을 대표하는 사원이며 또 루앙프라방은 무엇 때문에 라오스의 절대적인 핵심이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