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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농경(sky farm)

집중, 긴장, 그리고 이완

by 추산봉 2012. 2. 13.

1. 아우라
누군가에 대한 전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뇌 표층(이성)이 아니라
깊은 곳(감성)에 영향을 주는 경우라면 그의 아우라(aura)는
보다 강렬하고 또렷해진다.
우리는 '훌륭하고 존중할 만한 이론'을 가진 인물보다는
'이유도 모르겠고 혐오감마저 있지만 어찌 된 노릇인지
모습이며 말투며 일거수일투족에 마음이 끌리는' 사람에게 더 강한 아우라를
느끼는 게 보통이다.

아우라가 있는 사람은 폭포 밑에서 도를 닦는다거나 하는
별난 일을 벌이지 않더라도 전설을 만들어 낸다.
전설은 '일화'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이어서 반드기 그가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어떤 일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지에 의해 만들어진다.


2. 목표
꿈은 싫증난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즐겨야 하는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하지만 목표는 그런 게 아니다.
목표는 실천으로 달성해야만 하는 것이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 목표를 설명할 시간도 없다.
아직 달성하지 못한 목표를 타인에게 발설하면
그것을 이루려는 의지만 '흩뜨려' 약화시킬 뿐이다.
목표는 마음 깊은 곳에 봉인해 두어야 한다.
목표를 갖는다는 것은 곧 걱정을 끌어안는 것이다.


3 정열이라는 덫
일본은 1970년대 무렵투터 근대화가 막을 내렸고,
1990년대에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고용을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공공기관과 기업이 급속하게 흡인력과 구심력을 잃어 갔다.
그 와중에 개별적인 목표를 찾아낸 개인들이 조직과 집단의
기존 틀에서 벗어나 꺼리김 없이 과학적인 노력을 통해
성공하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냈다.

이처럼 확연한 변화 속에서 정열이라는 말은 마치 애초부터
존재한 적이 없었던 듯 본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옛말의
잔재처럼 농담조로나 쓰이게 된 것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정열이 지금처럼 강한 동기부여와 정신력,
그러니까 개인의 성공에 필수조건이 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고 할 수 잇다.
그렇더라도 정열이라는 말 자체는 불필요하다.
정열에 대해 말하는 것과 정열이라는 개념을 자기 능력의
일부로 삼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4. 집중과 긴장과 이완
액터스 스튜디오의 위대한 지도자 리스트라버그(Lee Starsberg)는
집중에 관해 다음과 같이 아주 중요한 지적을 했다.

"극적인 상황의 인물을 연기할 대 배우는
스스로 극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을 자각해야만 한다."

예컨대 망연자실한 상태의 인물을 연기할 때
배우는 스스로 망연자실해지는 게 아니라
'망연자실한 인간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라는 분명한자각 속에 연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집중해서 소설을 쓰고 나면 충만감과 성취감, 그리고
정신적 안식을 얻는다.
소설을 마친 뒤에는 휴양지를 찾아서 푹 쉬고 싶다거나
긴장에서 벗어나 풀어짐을 맛보다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긴장을 풀고 집중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실제 일에서
온오프(on-off)의 구별이 없다.
온 힘을 다하여 맡은 일을 타협 없이 끝내겠다는 욕구는
있을지언정 얼른 대충 마치고 즐기고 싶다는 생각은
아예 들지 않는다.

"충실하게 일을 하려면 일에서 벗어나 심신을 풀어주는
오프의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하는 건 무능한 비즈니스맨을 겨냥하여
상업주의가 퍼뜨리는 거짓말이다.

-출처: 무라카미 류, (무취미의 권유), 부키, pp.31~44